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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에 경제 책임 떠넘겼다"…파월 2.0은 물가·고용 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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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오른쪽)이 조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EPA=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오른쪽)이 조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국의 통화정책을 4년 더 이끌게 됐다. 파월의 연임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깼던 Fed 의장 재임명의 전통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민주당원인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을 다시 지명하지 않고, 공화당원인 파월을 선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차기 Fed 의장에 파월 의장을 재지명했다. 상원 청문회를 통과하면 파월은 2026년 2월까지 Fed를 이끈다. AP통신은 “지난해 도박과 같은 초저금리 정책으로 코로나19 침체에서 미국 경제를 구한 점이 연임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돈 풀기’ 여파로 생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6.2%로 3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치솟는 물가는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미국 경제를 다시 고꾸라뜨릴 수 있다.

파월은 이날 “인플레이션이 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 안다”며 “강력한 노동시장을 지지하고, 인플레이션이 공고해지는 걸 막기 위해 여러 수단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줄곧 언급했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

지난 17일 미국 일리노이주 마운트 프로스펙트의 한 식료품점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가 판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미국 일리노이주 마운트 프로스펙트의 한 식료품점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가 판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수록 파월의 선택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물가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파월이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에서 매파(긴축 선호)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매파로의 변신에서 주요한 수단은 기준금리 인상이다. AP는 “시장 전문가들은 Fed가 내년에 최소 두 번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발 더 나아갔다. Fed가 내년에 0.25%포인트씩 최소 3번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첫 인상 시점도 빨라질 것이란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Fed 워치는 내년 5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49.67%, 6월을 82.02%로 전망했다. 비둘기파에 가까운 파월의 연임 소식에도 시장이 출렁인 이유다. 이날 나스닥(-1.26%)과 S&P500(-0.32%)은 하락했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1.629%까지 치솟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리인상 확률(11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리인상 확률(11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이 물가 오름세의 진압에 나서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Fed의 책무 중 하나인 ‘고용’이다. 지난 10월 53만1000명의 신규 일자리가 생겼지만 코로나19 이전인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400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이다. FT는 “Fed가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가는 불편할 정도로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급격하게 긴축으로 돌아서면 일자리를 회복은 요원해질 수 있다. WSJ은 “금리를 예상보다 빨리 올리면 저금리를 바탕으로 날아오른 주식과 부동산 시장 거품이 급격히 빠지고, 실업률이 급등할 위험이 있다”며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파월은 107년 Fed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하나라도 실수한다면 경기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난감한 상황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파월의 연임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파월에게 경제적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세라 바인더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파월이 재임명되면) 경제 회복세가 흔들리거나 인플레이션이 이어져도 대통령이 아닌 파월의 책임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WSJ은 “대중은 인플레이션도 싫어하지만, 실업률 급등도 싫어한다”며 “(그런 충격은) Fed와 파월 의장에게도 정치적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AP=연합뉴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레이얼 브레이너드 Fed 이사를 부의장에 지명한 것도 파월에겐 부담이다. 민주당 내 진보진영은 은행 규제와 기후 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파월의 연임을 반대했다. 반면 민주당원인 브레이너드는 기후 변화 대응에 나서고 강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브레이너드의 부의장 지명으로 진보진영 달래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중앙은행 전략 헤드는 “브레이너드의 부의장 지명은 Fed 핵심에 그를 앉힌다는 것”이라며 “브레이너드는 이후 Fed 의장이나 재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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