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 나오면 200만원' 봉쇄에 4만명 횃불 들었다…아수라 유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에서 19일(현지시간) 코로나19 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들이 시위대가 불을 붙인 물체 인근에 서 있다. 시위대들은 경찰차를 부수고 공공 기물을 파손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EPA=연합뉴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에서 19일(현지시간) 코로나19 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들이 시위대가 불을 붙인 물체 인근에 서 있다. 시위대들은 경찰차를 부수고 공공 기물을 파손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EPA=연합뉴스]

20일 저녁(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연방수상청 앞. 한무리의 시위대가 횃불을 들고 정부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국민이 아닌 국경을 통제하라” “우리 아이들에게 손을 떼라” 등의 불만 섞인 구호를 쏟아 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앞서 22일부터 전국민에 대한 일시적 외출 제한 등 코로나19 전면 봉쇄 정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바로 맞은 편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민들이 노천 카페에서 옹기종기 앉아 따뜻하게 끓인 와인 음료를 앞에 두고 제한적이나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두 쪽으로 갈라진 세계.’ 연말을 맞이 하는 유럽의 거리 풍경이 코로나19로 인해 극과 극이 됐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오스트리아ㆍ독일ㆍ헝가리ㆍ체코 등은 올 겨울 코로나19의 새로운 진원지로 지목될 만큼 확진자 폭증세를 맞았다. 각국 정부는 속속 코로나19 봉쇄 조치와 백신 의무 접종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는 흐름이 만만찮다.

주말 새 빈에서 벌어진 정부 비판 시위에는 4만 명이 참여했다. 옛 호프부르크 왕궁의 광장에서 총리실에 부근까지 낮 동안 평화적으로 이뤄지던 시위는 날이 어둑해지며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던 시위대들은 경찰들에게 맥주 캔을 던지거나 화염 도구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5명이 과격 시위 혐의로 체포됐다.

20일 오스트리아의 확진자는 1만 5809명. 사상 최대였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확산세를 막기 위해 22일부터 전국적으로 필수재 구매 등의 제한적 사유를 제외하곤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봉쇄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백신 미접종자에 한해 도입했던 정책을 전면 봉쇄로 확대한 것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1450유로(약 196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내년 2월 1일부터는 전국민에게 백신 접종도 의무화 된다.

2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횃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당신의 국민들이 아닌 국경을 통제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횃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당신의 국민들이 아닌 국경을 통제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네덜란드에서도 주말 새 유혈 시위가 벌어져 최소 7명이 다치고 51명이 체포됐다. 네덜란드는 이달 13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코로나19 영업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식당 등 대중시설의 운영이 저녁 8시까지 제한된다.

19일 로테르담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시위대 두 명이 총에 맞았고, 경찰 한 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가 경찰차를 부수고 불을 붙이면서 경찰들도 물대포를 이용해 시위대를 강제 진압했다. 아메드 아부탈레브 로테르담 시장은 “폭력의 난장판이 벌어졌다”며 “경찰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2G 정책’ 입법화를 놓고 여론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2G는 백신을 맞았거나(Gevaccineerd), 코로나19에서 완치된(Genezen) 이들이 아니고선 식당, 문화 시설에 출입하지 못 하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독일 작센주 등에선 이미 시행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현재까지는 백신을 맞지 않았어도 코로나19 음성 테스트(Getest)를 받은 사람까지는 허용하는 ‘3G 정책’을 시행 중인데, 백신 접종률이 너무 낮아 2G로 강화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화 된 코로나19 정책, “정부가 파시스트”

20일(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정부의 코로나19 제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EPA=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정부의 코로나19 제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EPA=연합뉴스]

유럽에서 이처럼 갈등이 표면화 된 배경에는 백신 접종과 정부의 코로나19 조치를 둘러싼 논의가 이미 정치화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유독 확산하는 국가들은 백신 미접종자 비율이 30%대로 높은 편이다. 높은 백신 거부감의 원인으로 정부의 정책을 공중 보건이 아닌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받아 들이는 집단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NYT는 오스트리아의 극우 성향 포퓰리즘 정당 자유당(FPO)이 주말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을 꼽았다. 자유당 소속 정치인 우도 란트바워는 빈의 헬덴 광장에서 “백신 접종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모두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연설을 했다. 시위에서는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정부를 “전체주의자” “파시스트”라고 비판하는 구호가 나왔다. 이들은 독일 등 이웃 국가의 극우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어린 자녀 둘을 두고 있는 주부라고 밝힌 카트야 쇼이생어는 NYT에 “사회가 공적 생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받는 이들로 광범위하게 갈라져 있다”며 “백신을 접종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런 반대도 하고 있지 않다”며 시위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반면 빈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비스미라 알렉시는 시위대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확성기를 들고 “당신들은 지금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고 아무도 권리를 짓밟지 않고 있다”며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비판했다. 시위대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면서다.

백신을 반대하는 이들의 시위는 유럽 국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선 주말 마다 정부의 코로나19 ‘그린 패스’에 반대하는 이들의 집회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수천 명 규모의 반 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