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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출판 진흥 대선 공약을 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3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격주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는 2021년 출판계를 31개 키워드로 정리한 특집을 최근 게재했다(11월 5일자 547호). 문을 닫는 서점들(25년 된 은평구의 불광문고 폐업), 급성장하는 전자책 시장(웹툰·웹소설 플랫폼 기업 매출 2020년에 전년 대비 26.3% 성장), MZ 세대에 주목하거나 재테크 책이 인기를 끄는 현상 등을 간결하게 짚었다. 어느덧 결산의 계절인 것이다. 그런데 특집 안의 ‘숏폼 시대, 책과 콘텐츠’라는 글에 이런 문장이 보인다.

“이처럼 숏폼 콘텐츠 시대에, 한 권으로 구조가 완성되는 ‘책’의 존재가 콘텐츠 시장에서 기존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통합전산망·정가제 등 과제 산적
문제 파악해 고칠 건 고쳐야 한다

숏폼은 틱톡 같은 SNS에서 유행하는 수십 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을 뜻한다. ‘종이책 출구전략’은 그런 숏폼 등에 맞서 종이책 본연의 가치를 대중에게 설득하면서도, 책 설계 단계부터 다매체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진단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변화하는 현실에 눈감았다가는 누구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숏폼 말고도 한국 출판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숏폼 걱정이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장 먼저 낙후된 출판 유통 현실이 떠오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신경망이다. 수천 개의 출판사와 역시 수천 개의 전국 서점, 중간의 다양한 유통 채널을 하나로 묶어주는 통합전산망 말이다. 이게 없어서 생기는 폐해는 이 칼럼에서 이미 몇 차례 언급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망이 없는 게 아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9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개발했다. 6개월 시한을 두고 출판사들을 상대로 개선 사항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다. 일부 출판사와 서점들이 미온적인 것 같지만 정착되면 멀쩡하게 출간된 책이 어디에 가 있는지 누구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우선 사라질 것 같다. 이지스퍼블리싱 이지연 대표는 “사용해 보니 파워풀한 것 같다”고 했다. 개별 서점들에 일일이 들어가지 않고도 전체 책 판매 현황을 한눈에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산업 통계도 제공해 그에 맞는 출판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지역 서점이 기를 못 펴는 상황도 발목을 잡는다. 한국서점조합회에 따르면 2011년 2577개였던 국내 서점 수는 2015년 2165개, 2019년 2320개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숏폼 세상에 이런 현실은 받아들일 만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참고로 이웃 일본의 서점 숫자는 2015년 1만3488개였다(2016년 ‘해외출판정책연구’). 지금도 1만 개를 웃돈다고 한다. 적어도 서점에서 시간 보내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회는 일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점의 위축은 이제는 대세로 자리 잡아 문제 삼기조차 어려운 현행 도서정가제와 관련 있다. 온라인 서점에만 15% 가격 할인을 허용하는 대목 말이다. 출판사들은 온라인 서점 할인을 감안해 책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고 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그런 점에서 지금 정가제는 제도적 거품이 끼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서점이 안 되는 현실과 은퇴 후 너도나도 치킨집 창업에 나서는 현상은 관계없는 것일까.

이런 점들을 문제로 인식하고 고치려 한다면 지금이 적기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이 끝나는 해다. 문체부는 2022~2026년 새 계획을 지금 짜고 있다. 고칠 게 있다면 거기에 끼워 넣자. 더구나 곧 대선 아닌가. 아직까지 출판 진흥에 관한 공약을 내놓은 후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출판인들의 표심을 선점할 기회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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