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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돼서야 병상 배정" 요양병원발 감염, 올해도 아슬아슬

중앙일보

입력

수도권의 A 전담요양병원은 요즘 쉴새없이 밀려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받는다. 10명 중 9명은 요양병원, 시설 등에서 확진돼 들어온다. 17일 하루 동안에만 인근 요양병원과 데이케어센터(노인주간보호시설)에서 20명이 왔다. 이 병원 의료진은 “12일에 확진된 환자들인데 일반 전담병원 등에 병상 배정이 안 돼 이송이 늦어진 것 같더라”고 전했다. 이 병원은 17일까지 273개 병상이 거의 다 차 40명 정도 환자만 받을 수 있다. 80개 병상을 운영하는 수도권 B 전담요양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병원 관계자는 18일 “오늘 10명이 퇴원해 나갔는데 12명을 받아 76명이 입원해 있다”며 “매일 75~77명 정도는 환자가 차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차 대유행때 교훈 잊은 정부 #전담요양병원 추가 지정에 애로 #코호트 격리 병원선 위중해져야 이송

최근 잇따르는 요양병원·시설 집단감염으로 수도권에 두 곳뿐인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은 연일 풀가동 상태다. 18일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전날(17일)까지 전국에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인 요양병원(34곳)과 요양시설(22곳)은 모두 56곳이다. 여기서 확진자 1880명이 나왔으며 이곳서 사망하거나 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결국 숨진 이들이 80명이나 된다.

지난 8월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 요양병원에서 119구급대가 확진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월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 요양병원에서 119구급대가 확진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시스

요양병원·시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확진자와 해당 병원 비감염자 등을 전원해 돌볼 곳이 필요한데 이들을 받는 곳이 A, B 같은 전담요양병원이다. 요양병원 확진자는 거동할 수 없는 환자가 대부분이라 일반 전담병원 등에서 받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식사와 대소변 처리 등 기본 돌봄만으로 손이 많이 간다. A 병원 의료진은 “코호트 격리되면 확진자는 빨리 전담병원으로 빼고 전담요양병원에선 밀접접촉자를 1인 1실로 관리해야 하는데 대부분 돌봄이 필요한 환자다 보니 일반 전담병원에서 잘 안 받으려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연말 3차 유행 당시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등에서 집단 확진, 집단 사망 문제가 떠올랐고 당시 정부는 전담요양병원을 11곳 지정했다. 그런데 올 들어 접종이 시작되면서 요양병원 관련 감염이 크게 줄었고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자 대다수가 지정 해제돼 현재 4곳만(수도권 2곳) 남았다. 요양병원발 집단감염이 확산하자 정부가 지난 12일에서야 수도권 4곳(405병상)을 신규로 지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시설 공사와 인력 충원, 기존 환자 이송 등의 문제로 당장 환자를 받기 어렵다.

전담요양병원으로 신규 지정된 한 병원 관계자는 “음압기를 설치하려면 외벽을 수리해야 하는데 건물주 반대로 못하고 있다”며 “지정이 해제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규 전담요양병원 관계자는 “지정 후 기존 의료진이 나가 2명의 의사를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데 구하질 못하고 있다”며 “빨라야 내달 중순부터 환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수본 관계자는 “17일 서울시와 협의해 추가로 190병상의 전담요양병원이 12월 초 문 열기로 했다”며 “이외에 서울·경기·인천 등에 3곳씩 총 9곳을 추가 지정하기 위해 병원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집단감염이 터진 요양병원 등에선 추가 감염과 환자의 급격한 병세 악화 등을 우려하며 아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양병원처럼 고령의 와상 환자 등이 많은 경기 고양시 한 병원에서는 종사자와 환자 등 확진자가 100명 넘게 나올 때까지 환자 2명만 전담요양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환자는 심정지가 발생한 뒤에서야 병상 배정이 이뤄졌다. 이 환자는 수 시간 기다려 충청 지역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일부 환자 가족들은 “거동 불편한 치매 노인 등은 어린이들처럼 보호자가 재택 간병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문제가 제기되자 중수본은 해당 병원에 “내과 의사 1명을 19일부터 지원하고, 간호사 10명, 요양보호사 10명을 신속히 지원할 예정”이라며 “위중증 환자가 발생한 경우 신속히 전원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거점 전담병원 중등증 병상 등에 요양병원·시설 확진자를 우선 배정하겠다”라고도 했다.

A 병원 의료진은 “단계적 일상회복을 하면서 환자가 증가하고 추가접종(부스터샷)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 집단감염이 생길 것도 알았을 텐데 낙관적 전망으로 정부가 충분한 의료자원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전남 한 요양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조치가 이뤄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전남 한 요양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조치가 이뤄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수많은 희생 끝에 얻은 교훈을 잊었다는 질타가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해 중환자 이송이 안 돼 요양병원 안에서 환자가 치료받다 연속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국민청원 등이 나오며 참상이 알려졌다”며 “그 뒤에야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병상 확보 등의 조치를 해 위기를 넘겼는데 판박이 같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 환자에 코호트 격리를 넘어 치료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추가접종을 빠르게 해 집단감염을 차단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백신 버스로 요양병원을 돌면서라도 접종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코호트 격리된 병원들도 비감염자 등에는 추가접종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담요양병원들은 중증 병상도 충분히 마련해달라고 요구한다. A 병원 의료진은 “상태가 악화해도 전원이 잘 안 돼 DNR(심폐소생술 거부)에 사인한 분만 받고 있는데 하루 평균 1명씩 사망한다”며 “중증 병상을 확보하고 추가접종을 빨리 해야 겨울철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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