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김 위원장, 장기 잠행 뒤 도발 또는 담판…이번엔?

중앙일보

입력 2021.11.19 00:33

업데이트 2021.11.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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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집권 10년, 김정은의 잠행 정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시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6일 전했다. 북한이 그의 공개활동 소식을 전한 건 35일 만이다. [AP=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시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6일 전했다. 북한이 그의 공개활동 소식을 전한 건 35일 만이다. [AP=연합뉴스]

다음달 17일은 북한의 2대(代)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그의 아들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10년을 의미한다.

신정(神政) 체제인 북한에서 후계자인 김 위원장은 아버지(김정일)로부터 절대권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라고 하지만 수령을 ‘신’(神)으로 여기는 곳이 북한이다. 수령이 가리키는 ‘손끝’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최고지도자가 바뀌었지만 북한이 수령 중심의 사회주의라는 점은 ‘김정은의 북한’에서도 그대로다. 김 위원장의 행보가 닫혀 있는 북한을 읽어 내는 나침반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지난 10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분석했다.

10년 평균 사흘에 한 번 공개활동
2주 이상 잠행은 올해 최다 근접
군대, 미사일 발사현장 발길 끊어
경제난·코로나19 돌파구 찾는 듯

지난 16일 잠행 35일 만에 등장

김 위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1226회(18일 기준, 통일부 통계)의 공개활동을 했다. 북한 매체가 평균 2.95일, 즉 사흘에 한 번꼴로 그의 활동 소식을 전한 셈이다. 반면, 김 위원장이 2주일 이상 공개활동을 중단한 ‘장기 잠행’은 31차례나 된다. 지난달 12일부터 35일 동안 등장하지 않다 삼지연을 찾았다는 소식(16일)이 전해진 게 대표적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연간 공개활동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었지만, 그의 장기 잠행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151차례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212회의 공개활동을 펼쳐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 그의 공개활동은 해마다 감소했고, 지난해엔 역대 최소인 54회로 2013년의 4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김 위원장은 72회의 공개활동을 해 지난해보다 다소 늘었다. 하지만 평균 4.47일에 한 번꼴로 등장하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그의 공개활동은 80회 안팎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규모가 될 전망이다.

결단의 순간, 사라지는 김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도별 공개활동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도별 공개활동

김 위원장은 2012년 2주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횟수가 3차례였다. 일각에선 그가 갑자기 권력을 물려받아 집권 초 제왕학에 집중했거나 휴식의 시간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2013년과 2014년엔 각각 1회, 2015년과 2016년에는 ‘0’으로 줄었다.

그런데 그의 장기 잠행은 2017년부터 매년 2회→3회→6회로 늘더니 지난해엔 8차례, 그리고 올해는 18일 현재 7회를 기록 중이다. 등장횟수를 줄이고, 등판 간격을 2주 이상 늘리는 횟수가 빈번해진 셈이다. 정보 당국은 매번 “김 위원장은 건재하고, 정상적인 통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언급할 뿐 구체적인 잠행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 그가 최장 기간인 40일 동안 모습을 감췄던 2014년 9~10월의 경우 건강상 문제가 있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이 활동을 재개하며 지팡이를 들고, 절뚝이는 모습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발목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거나 족저근막염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를 제외하곤 그의 잠행은 ‘큰일’의 예고편 또는 정책구상 차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주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2016년의 경우 2월 열흘간의 침묵 뒤 인공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장거리 로켓을 쐈다. 그해 4월과 10월엔 미사일 발사에 실패하자 열흘씩 모습을 감췄다. 또 미국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에 총력전을 펴던 2017년에도 그의 장기 침묵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이 군사적인 긴장을 고조시킨 뒤 대응 방안을 고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미국·중국 등과 활발한 대화에 나섰던 2018년 역시 이런 상황이 재현됐다. 그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진행한 남북 대화에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한 직후 그해 3월 28일 중국으로 떠날 때까지 21일 동안 모습을 감춘 것이다.

공개활동을 재개한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남북정상회담(2차례)→대미특사파견→북·미 정상회담(6월 12일) 등 숨 가쁜 대외 일정에 나섰다. ‘그가 사라지면 사고(도발)가 터진다’는 공식이 바뀐 순간이다. 그러나 군사적 행동이건, 담판이건 ‘거사’를 앞두고 김 위원장이 잠행에 들어가는 패턴은 그대로였다.

김 위원장은 서방 언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국내외 언론이 그의 침묵에 의혹을 제기하면 머지않아 등장해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러면서도 “원산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평남 순천(지난해 5월)이나 백두산 인근 삼지연(지난 16일)에서 나타난다. 2019년 5월과 지난해 5월 신변이상설이 제기됐을 땐 하루만 깜짝 등장한 뒤 다시 각각 20일과 21일 모습을 감춘다. 건강이상설엔 하루 6곳을 현지지도하는 강행군도 불사(2019년 6월)한다.

그는 줄기차게 찾던 미사일 발사 현장을 비롯해 군부대를 향한 공개적인 발걸음을 최근 뚝 끊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2017년 11월 29일 이후 멈췄다. 국제사회가 제시한 ‘레드라인’을 나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김 위원장은 재등판의 계기를 ‘거사’의 예고편 대신 대부분 노동당 회의 준비 또는 주택건설 지역 방문 등 민생 챙기기로 전환했다. 집권 초기 공개활동 재개 무대를 만경대 유희장(놀이공원)이나 대성산종합병원 등 주민생활과 관련한 현지지도에 나섰던 상황과 유사하다.

내년 초 인공위성 발사 우려도  

지난 10년간 김 위원장은 장기 잠행 뒤 ‘민생 챙기기→군사적 행동→대화’로 정책적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 다시 강조하고 있는 자위력 강화를 제외하곤,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언이나 단번도약 등 장고(長考) 끝에 나온 성과는 크지 않다.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둔다’는 말이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의 장고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종전선언을 비롯해 한반도 정세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일각에선 북한이 내년 초 인공위성 발사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장기 잠행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올해 들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장고의 결과물’이 자위력 강화가 아닌 경제적으로 졸라맨 주민들의 허리띠를 푸는 통 큰 결단의 시간이었기를 기대해 본다.

열차 시범운행에 격리 숙소까지…북·중 육로 교역 재개 잰걸음
북한과 중국이 육로 교역 재개에 대비해 북·중 접경 도시인 평북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에 각각 격리시설을 마련했다고 대북 소식통이 18일 전했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북한은 올해초부터 중국에서 들여온 교역 물품을 소독하고 일정 기간 보관하기 위해 의주비행장에 방역설비를 마련했고, 지난 9월 공사를 마무리했다”며 “이에 더해 지난달엔 양측이 각각 신의주와 단둥에 숙박시설을 마련했고, 이를 유사시 격리시설로 활용키로 했다”고 귀띔했다. 북한이 지난해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봉쇄했지만, 내부 자원 고갈로 인해 최근 불가피하게 제한적인 육로 개방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안을 마련중이라는 것이다.

소식통은 그러나 관련 시설은 보안시설로 분류됐다는 이유로 단둥역과 신의주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라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건물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기에 북한과 중국은 이달 초 신의주와 단둥에서 각각 출발한 기관차가 양측을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의 일부 구간을 운행하며 철로 상태를 점검했고, 최근엔 인부들이 공사에 나선 모습이 포착됐다. 이 때문에 북·중 교역 재개가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현지에서 돌고 있다.

하지만 단둥을 비롯해 중국에서 코로나 19 환자가 확산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북한의 국경개방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내 소식통도 “단둥시 질병관리 당국은 지난 8일 주민들의 외출을 삼가라는 코로나19 긴급주의보를 발령했다”며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단둥과 다롄(大连) 등지에서 코로나19 상황이 화물열차 운행을 위한 택일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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