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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선

김종인-이준석의 '깐부' 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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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선대위 인선과 관련해 16일 “내일(17일) 윤석열 후보와 제가 상의를 한다. 그 이후에 성안된 것을 가지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최종적으로 상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과 윤 후보가 먼저 조율한 다음에 김 전 위원장이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는 거다. 이상하지 않은가. 당의 대선 후보는 윤석열인데, 권력 서열은 김종인이 더 위고, 이준석은 윤석열과 동급이라는 식으로 언급하니 말이다. 당장 여당에서 “김종인 상왕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서울 중구 한 호텔 식당에서 만찬 회동한 뒤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서울 중구 한 호텔 식당에서 만찬 회동한 뒤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정작 이튿날에 이 대표는 자신은 윤 후보를 만나지 못했다면서도 윤석열-김종인 회동이 있었다는 것을 취재진에 친절히 알려주었다. 둘의 비공개 회동을 당 대표가 나서서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이후 광화문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를) 만날 기회가 있어야 만나지”라며 시치미를 뗐다. 선대위 인선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자리를 뜨려던 김 전 위원장은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선대위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발걸음을 멈추고 “기구만 하나 만들어놓고 몇 사람 들어간다고 국민통합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짓은 괜히 국민한테 빈축만 사지 별 효과가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내비쳤다.

김종인-이준석 연대 강화하며 #'윤석열 선대위' 흔드는 모양새 #정권교체에 힘 실릴지는 의문

이준석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17일 저녁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에 대해 “여의도 정가에 보면 아이디어가 떨어졌을 때 많이 하는 게 통합론”이라며 “콘셉트가 잘 잡혀야지 효과가 있지, 반문 집합소같이 되면 (참패한) 2020년 총선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을 거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TBS 시민의방송 유튜브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TBS 시민의방송 유튜브 캡처]

이 대표는 18일 아침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도 출연했다. 선대위 합류 예정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에 대해 “그분(김병준)이 과거 언론 인터뷰 등에서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을 세게 들이받았다.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분 개인이 노력해서 풀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김종인 원톱 선대위 외 다른 옵션을 고려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윤 후보에겐 불가능하다”며 “결국 김종인 전 위원장의 의중이 조금 더 많이 반영되는 형태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하고 싶은 말을 이 대표가 대변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캠프 구성을 두고 각 세력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건 역대 대선에서도 흔히 있었다. 특히 선거 승리가 기대되는 당에선 차기 권력 지형과 직접 연결된 터라 과열 양상이었다. 당과 대선 후보 지지율이 오르고,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 ‘잿밥’에 눈이 돌아가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내년 대선이 끝나고 3개월 뒤엔 지방선거까지 있지 않나. 챙겨야 할 자리가 수두룩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 세 번째)가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 김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앞줄부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동연 전 부총리, 윤 후보, 김 전 비대위원장, 금태섭 전 의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 세 번째)가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 김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앞줄부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동연 전 부총리, 윤 후보, 김 전 비대위원장, 금태섭 전 의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그렇다 해도 최근 '김종인-이준석 커플'이 윤 후보를 압박하는 수준은 아슬아슬하다. 특히 김병준 전 위원장, 김한길 전 대표의 선대위 합류를 두고 민감한 반응이다. 하지만 김병준 전 위원장은 ‘노무현의 책사’였고, 김한길 전 대표는 대표적 ‘비문’이었다. 개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중도 확장성 측면에서 충분히 쓸만한 카드 아닌가. 김종인 전 위원장은 기존 윤석열 캠프 인사를 향해 “파리떼” “자리 사냥꾼”이라고 했는데, 외려 지금 텃세를 부리는 건 김 전 위원장처럼 보인다.

이 대표의 행보는 책임있는 야당 대표라기보다 오히려 100만 유튜버를 연상케 한다. 유튜브 타이틀로는 ‘이준석의 볼륨을 높여라’가 적당할지 모른다. 어쩜 당내 갈등 상황을 이토록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나. 이달 초 윤 후보가 확정된 뒤 탈당 규모를 보란 듯 떠든 것도 이 대표였다. 당 대표임에도 그의 스피커는 집권여당을 향하기보다 당내 문제를 끄집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선대위 출범후 대표 입지가 축소되기 전에 최대한 지분을 챙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3월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당시 김종인, 이준석 비대위원 등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3월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당시 김종인, 이준석 비대위원 등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두 사람의 강점이 윤 후보의 약한 고리를 메울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에겐 예민한 정치적 촉수가, 이 대표에겐 2030, 특히 ‘이대남’의 지지가 있다. 이같은 전략적 포지셔닝이 유의미하다 한들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비할 수 있겠는가. 윤 후보가 ‘왕(王)’자 논란, 전두환 옹호성 발언, 개 사과 등에도 낙마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정권교체에 그나마 낫다는 지지층의 판단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가 계속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비친다면 역풍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둘은 ‘정치 초보가 독선적으로 한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종인-이준석 깐부'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들이 윤석열을 흔드는 건 말이 되고?”

최민우 정치에디터

최민우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