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워싱턴서 美 망신 줬다…한미일 공동회견 걷어찬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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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에 대한 불만으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을 거부했다고 인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를 둘러싼 사안에 대해 우리나라의 입장에 비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한국 측에 항의하는 가운데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한미일 외교차관들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3국 협의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사진 웬디 셔먼 트위터]

앞서 이날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워싱턴 협의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기로 돼 있었으나 "한일 간 이견"을 이유로 셔먼 부장관만 발언자로 나서 회견을 진행했다. 최 차관은 이후 한국 특파원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일본 측이 우리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문제로 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고 설명했다.

독도가 한일 사이에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나, 일본이 다자 외교 현장에서 불협화음을 드러내면서까지 강하게 의사를 표명한 건 이례적이다. 요미우리신문도 이날 셔먼 부장관의 단독 회견을 "이례적인 사태"라고 전했고 산케이신문은 "셔먼 부장관은 이번 협의가 '건설적'이었다고 말했지만, (한일 차관이 불참함에 따라) 호스트국가로서는 체면을 구긴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한미일 공조 강조하던 日, 돌출행동 왜?

일본은 그동안 한일 관계 악화 속에서도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런 일본이 미국의 입장까지 불편하게 만들며 '판을 깨는' 태도를 보인 데 대해선 "(일본에)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국이 독도 문제를 건드린 것을 상당히 불쾌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일어난 일종의 '충돌'인 만큼 강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 정권 출범 후 차관들의 첫 회동을 앞두고 한국 고위 관리가 독도를 방문한 것에 대해 일본 입장에선 "(일본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로 생각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도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일본 정치권에서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지방의 한국총영사관에는 벽돌이 투척되기도 했다.

자민당, 영토문제 지속적으로 강조

하지만 이번에는 차관급인 경찰청장의 방문인 데다 지난 2009년 10월에도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독도를 방문했지만 큰 갈등 없이 넘어간 적이 있어 일본의 이번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독도사랑운동본부 기업회원들로 구성된 독도사랑 경량 비행기 항공단이 독도의 날을 맞아 지난 10월 31일 독도를 무착륙 단독비행 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은 독도 상공에 뜬 경량 비행기 모습. [연합뉴스]

2009년 강 청장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은 옛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이 출범한 직후였다. 집권당의 성격도 달랐고, 한일관계 역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상태였다.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출범한 후, 일본 정부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독도 등 영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정치 이슈화했다. 독도가 자국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교과서에 싣고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하기도 했다.

외교소식통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기 전까지 일본의 보통 국민들은 독도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며 "우경화와 궤를 같이하는 영토 주권 강조의 흐름 속에서 앞으로도 일본은 독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