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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블랙팬서' 맬컴X 암살범들, 55년만에 누명 벗었다

중앙일보

입력

1960년대 미국 급진적 흑인민권운동가인 맬컴 엑스(X)를 암살했다는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55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은 17일(현지시간) 뉴욕주(州) 맨해튼 지검이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무하마드 아지즈와 칼릴 이슬람의 무죄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1964년 뉴욕 테레사 호텔에서 연설 중인 말콤 엑스. [AP=연합뉴스]

1964년 뉴욕 테레사 호텔에서 연설 중인 말콤 엑스. [AP=연합뉴스]

NYT에 따르면 맨해튼 지검은 지난 22개월 동안 사건을 재조사했다. 재조사에선 두 사람의 결백을 입증할 증거와 증언을 연방수사국(FBI)과 뉴욕 경찰이 누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증거가 과거 재판에서 공개됐다면 둘의 무죄 평결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당시 아지즈와 이슬람은 재판정에서 무죄를 주장했으나 종신형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복역했다. 아지즈는 1985년 석방돼 현재 83세 노인이 됐고, 이슬람은 1987년 풀려났지만 지난 2009년 사망했다. 뉴욕 맨해튼 지검의 사이러스 밴스 지검장은 아지즈와 이슬람, 그들의 가족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당시 법 집행 기관의 심각한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사과했다.

1965년 맬컴 엑스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무하마드 아지즈.[AP=연합뉴스]

1965년 맬컴 엑스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무하마드 아지즈.[AP=연합뉴스]

맬컴 엑스 암살 사건은 1965년 그가 연설하기로 돼 있던 뉴욕 할렘의 한 무도회장에서 발생했다. 맬컴 엑스는 흑인 민권운동 전성기인 1960년대 강경투쟁 노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비폭력 노선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성(姓) 'X'는 백인들이 흑인 노예에게 지어주던 '리틀'을 버리고 바꾼 것이다. 그의 사후 강경투쟁 노선을 추종하는 흑인무장조직 '블랙팬서'가 결성되기도 했다.

맬컴은 '이슬람 네이션'이라는 급진적인 흑인 이슬람 단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주목 받았다. 암살 당시 그는 이슬람 네이션과 갈등을 빚고 단체를 떠나있는 상태였는데, 수사기관은 이슬람 네이션 소속 조직원이 맬컴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이에 이슬람 네이션 회원이었던 무자히드 압둘 할림과 이번에 혐의를 벗은 두 사람 등 3명이 기소됐다.

196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좌)와 맬컴 엑스(우)가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96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좌)와 맬컴 엑스(우)가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재조사는 사이러스 맨해튼 지검장이 맬컴 엑스 암살 의혹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엑스를 죽였나?'(2020)를 보고 착수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한 아마추어 연구자를 통해 이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FBI 등 수사기관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긴 맬컴이 죽자 수사를 뭉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맨해튼 지검은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탐사보도 기자 레스 페인과 타마라 페인 쓴 맬컴 엑스의 전기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있다』에선 2018년 사망한 이슬람 네이션 조직원 윌리엄 브래들리를 진범으로 지목했다. 이 책은 올해 퓰리처상(전기와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NYT는 "(조사 결과는) 흑인들이 형사사법제도에서 차별의 피해자였다는 씁쓸한 진실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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