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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한국의 '그린 먹튀' 논란… '기후 사기꾼' 몰릴 우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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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막 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후유증

그래픽=신용호 기자

그래픽=신용호 기자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한국은 산림 보호와 토양 회복 및 메탄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협약에 동참한 것은 물론 획기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석탄 발전도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다짐에 국내외 반응은 사뭇 냉소적이다. 특히 의욕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석탄 발전 중단과 관련된 정부의 목표를 놓고 현실성 논란이 불붙었다. 일각에선 이러다 '기후 악당'을 넘어 '기후 사기꾼'으로 몰릴 거란 우려마저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COP26 관련 핵심 쟁점과 향후 파장 등을 짚어본다.

탈석탄 발전 선언 서명 후 딴 얘기 #지킬 자신 없으면 참여 안 했어야 #온실가스 40% 감축 약속도 무리 #고율의 국경탄소세 맞을 위험도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2040년 전까지 석탄발전소 폐지 동참
 #지난 1일(현지시각) COP26 정상회의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 스코티쉬 이벤트 캠퍼스(SEC). 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야심 찬 계획을 펼쳐 보였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건 세 가지 약속과 한 가지 제안이다.
 첫 번째는 "한국의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 목표(NDC)를 높여 2018년 대비 14%에서 40% 이상 감축하겠다"는 것. 그는 이어 "'국제메탄서약'에 가입해 메탄 감축에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숲과 땅에 관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산림 및 토지 이용에 관한 글래스고 정상선언'을 환영하며 개도국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은 에너지 관련으로 "세계 석탄 감축 노력에 동참, 2050년까지 모든 석탄 발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 기후 서밋'의 정례화를 제안했다.

 #사흘 뒤인 지난 4일 COP26 의장국 영국은 한국 등 40여 개국이 석탄 화력 발전을 중단하겠다는 '글로벌 탈(脫) 석탄 전환 선언'에 서명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선언의 핵심은 주요 경제국의 경우, 늦어도 2030년대에, 나머지는 2040년대에 석탄 발전소를 닫는다는 것이었다. 한국 측 서명자는 문승욱 산업부 장관으로 문 대통령은 헝가리에 도착한 상태였다.
 한국의 서명 소식이 전해지자 외신들은 일제히 이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중국·인도·호주 등 주요 석탄소비국은 물론 미국·일본까지 동참하지 않은 까닭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한국의 동참에 "놀라운 발표"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2030년대에, 즉 늦어도 2039년에는 석탄 발전소를 닫기로 한 선언에 동참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국내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큰 파문이 일었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잡은 정부는 그때까지 석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닫겠다는 게 기존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것이지 탈석탄 시점에 동의한 적이 없다" "방향성에 동의한 것이지, 합의 사항을 모두 따르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 선언은 석탄 발전 퇴출 시점을 주요경제국의 경우 2030년대, 나머지 국가는 2040년대로 명시했지만 조항 말미에 ‘또는 그 이후 가능한 한 빨리(or as soon as possible thereafter)’라는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언의 근본 취지는 선진국은 2039년, 나머지는 2049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단서 조항이 있긴 하나 이는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안 됐다면 최대한 빨리 달성하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이를 핑계로 2050년까지 석탄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만약 탈석탄 선언의 근본 취지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면 아예 서명하지 않는 게 옳았다.

해외언론 “한국 신뢰 잃었다” 비판
 이처럼 한국 정부가 선언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딴소리하자 해외 언론에선 즉시 보도했다. 영국 BBC는 "이번 선언 내용은 중요한 사안들"이라며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탈석탄 시점을 '2030년대 또는 가급적 빠른 시기'라고 한 조항을 계면쩍게 내세우며 2049년에야 이를 중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유로뉴스도 "한국이 선언에 서명하고도 슬쩍 발을 빼려 해 신뢰를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당초 탈원전 기조 속에서 2039년까지 석탄 발전을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9년 현재 석탄 발전량 비중은 전체의 40.4%. 이에 비해 신재생 에너지는 6.5%에 불과하다. 원전까지 없애면서 20년 이내에 석탄 발전을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건 한국의 여건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 분야 용어 중에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게 있다. 환경을 상징하는 그린(green)과 더러운 곳을 숨긴다는 뜻의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 합쳐진 것으로 "환경보호에 힘쓰겠다"고 약속하고도 아무 일도 안 하는 '위장 환경주의자'를 일컫는다. 이번에 한국이 탈석탄 선언에 서명하고도 지키지 않으면 그린워싱 국가로 몰릴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이미 '기후 악당'(Climate Villain) 소리를 듣고 있다. 국민 일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미국·캐나다와 함께 세계 최고인 데다 최근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 탓이다. 2016년 환경 전문가들의 모임인 '기후행동추적'(CAT)은 2016년 사우디·호주·뉴질랜드와 함께 한국을 기후 악당으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한 환경 전문가는 "한국이 탈석탄 선언을 지키지 않으면 기후 악당을 넘어 '기후 사기꾼'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기가 반년도 안 남은 문 대통령이 20~30년 뒤의 탈석탄 약속을 한 데 대한 논란도 거세다. 일각에선 국제 사회로부터 호평을 듣기 위해 책임 못 질 약속을 남발한다고 꼬집는다. 이 탓에 "문 대통령이 '그린 먹튀'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쨌거나 한국이 신뢰를 잃으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이 앞으로 탄소국경세를 매기면서 한국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도 있다. 탄소국경세란 허술한 온실가스 규제로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의 수출품에 부과하는 일종의 관세다. EU는 역내 기업들의 경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큰 비용을 부담하는 반면 이를 소홀히 하는 나라들은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가격경쟁에서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탈석탄 선언을 잘 지키지 않으면 응징 차원에서 고율의 탄소국경세를 때릴 가능성이 적잖다.

기후 전문가인 정태용 연세대 교수는 17일 ″화석 연료 없이 20~30년 내에 신재생 에너지를 주축으로 모든 전기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진=본인 제공

기후 전문가인 정태용 연세대 교수는 17일 ″화석 연료 없이 20~30년 내에 신재생 에너지를 주축으로 모든 전기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진=본인 제공

20~30년 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
  국내 최고의 기후전문가로 꼽히는 정태용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의 탈원전 기조 속에서 20~30년 내 석탄 발전 중단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왜 불가능한가.
 "한국의 경우 2019년 발전량 기준으로 석탄·LNG 등 화석 연료 비중이 66.0%에 달한다. 반면 이 정부가 강조해온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6.5%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연료 없이 20~30년 내에 신재생 에너지를 주축으로 모든 전기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앞으로 노력하면 되지 않겠나
 "현 정부 출범 전까지 30년간 전원 시장 내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2% 이하였다. 정부가 지난 4년 반 동안 돈을 퍼부으며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올리겠다고 올린 게 고작 6.5%다. 게다가 미래에는 전력 수요가 훨씬 더 는다. 세상이 디지털화할수록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강원도 산악 지역에 설치돼 있는 풍력발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 산악 지역에 설치돼 있는 풍력발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신재생 에너지가 바른 방향 아닌가.
 "신재생 에너지를 늘이는 과정에서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똑바로 안 했다. 제대로 했다면 산 위에 풍력발전소를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나무를 엄청나게 베어내고 산에 길을 내야 한다. 대규모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새만금에 해상 태양광 발전을 한다면서 태양광 패널을 섬유 강화플라스틱(FRP)을 이용해 물 위에 띄우려 한다. FRP에서는 미세플라스틱과 유리섬유가 나와 해양 오염이 일어난다. 20~30년 뒤에 나올 태양광 패널 폐기물은 또 어떻게 할 건가."
 -한국이 기후 악당 소리를 듣는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이래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온실가스를 30%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하고는 줄이기는커녕 15% 정도 늘렸다. 현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매년 4%씩 줄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줄인 것이 전부이다. 차기 정부에서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
 -다른 문제는 없나
 "절차적 정당성도 의문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 2년간 석탄 발전을 언제까지 가져가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해 왔다. 그러다 결국 몇 주 전에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탈석탄 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뒤집은 셈이 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도 수명 30년 이상인 석탄 발전소를 7개나 짓고 있다. 2039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한다면 손해를 어떻게 감당할지,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