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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재판 거래' 배상하라"…국가 "의혹일 뿐 입증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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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대법정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18년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대법정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지연·거래’ 의혹을 근거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시작됐다. 다만 ‘재판 지연 의혹’을 포함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73·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62·17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관련 형사재판이 수년째 진행 중이어서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 소송도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부장 홍진표)는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7)씨와 고(故) 김규수(2018년 사망)씨의 배우자 최모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사법부가 한쪽 당사자 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것은 “국가의 중대한 불법행위이자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씨 등은 2005년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2심에서 패소했다. 2012년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2013년 7월 서울고법은 이에 따라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후 2013년 8월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됐고, 2018년 10월 30일 이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원고 측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과 양 전 대법원장, 임 전 차장의 공소장 기재 내용 등을 근거로 법관들이 청와대·외교부 고위 공무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과 법정 밖에서 긴밀하게 접촉하며 원고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본다.

2018년 기소된 임 전 차장의 공소장 등에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강제징용 사건을 조기에 선고하지 말라거나, 정부 측 의견을 낼 기회를 달라는 청와대와 외교부 측의 요구를 받고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매개로 활동한 의혹 등이 담겼다. 이씨 등은 이를 근거로 지난 5월 대한민국에 원고당 1억100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날 법정에 나온 정부 측 대리인은 “재판 거래는 의혹일 뿐 실제로 입증된 것은 없다”는 주장을 폈다. 피고 측은 “현재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아 입증되지 않는데, 현재 상태에서 소송의 이유가 없다면 그대로 판결을 하거나 추후 입증 자료가 있을 때 소송을 내는 방식이 어떨까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이 사건 소송을 중지한 상태로 두기는 어렵다고 했다.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일단 6개월 뒤인 2022년 5월 이 소송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열기로 하고, 그때까지 관련 형사 사건의 추이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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