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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현실 됐다···러시아, 위성 기습요격에 우주가 난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자국 인공위성을 대상으로 ‘위성 요격 미사일’(ASAT‧Anti-Satellite weapon)을 시험 발사하며 대량의 파편이 발생해 국제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15일(현지시간) 일제히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우주에선 1㎝ 파편도 치명적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AFP=연합뉴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AFP=연합뉴스]

이날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가 자국의 위성 중 하나를 요격하는 신중하지 못한 시험을 진행해 수많은 우주 파편을 만들어 냈다”며 “이는 ISS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다른 우주 활동의 위험도 현저히 증가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우주 공간의 무기화에 반대한다는 그간의 주장이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규탄했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도 같은 날 트위터에 “파괴적인 위성 미사일 시험은 우주의 안보와 안전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러시아 인공위성 요격 과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러시아 인공위성 요격 과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 우주 전문 매체 스페이스뉴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14일 밤에서 15일 새벽 사이 ‘코스모스-1408’로 추정되는 위성에 ASAT를 발사해 파괴했다. 이 인공위성은 지난 1982년에 발사했다가 수년 전 가동을 멈춘 첩보 위성으로 마지막 관측 당시 지상 약 485㎞ 궤도를 돌고 있었다.

이에 지상 420㎞ 궤도를 돌고 있는 ISS에는 한때 비상이 걸렸다. 폭발 여파로 인공위성이 1500개 이상의 추적 가능한 파편과 수만개의 추적 불가능한 미세 파편으로 분해되며 이른바 ‘파편 구름’(debris cloud)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공기 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 이런 파편은 총알보다 7~8배 빠른 초속 7㎞ 이상으로 움직인다. 1㎝보다 작은 파편 하나로도 우주비행사와 우주정거장 등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칫하면 날아오는 우주 파편에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영화 ‘그래비티’ 속 공포가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우주잔해의 궤도가 ISS를 피해가 상황은 우선 일단락됐다. 당시 ISS에 머물고 있던 미국, 러시아, 독일 출신 우주비행사 7명은 취침 중에 급히 깨어나 90분마다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수준으로 근접하는 파편을 긴장 상태로 지켜봤다.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 마크 반데 하이는 15일 자정 미 존슨 우주센터와의 교신에서 “정상이 아니었지만, 협조가 잘 된 하루에 감사하다. 내일은 사태가 좀 더 진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주파편 충돌을 주제로 한 영화 '그래비티' 영화 장면 캡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주파편 충돌을 주제로 한 영화 '그래비티' 영화 장면 캡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러시아의 ASAT 발사 시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차례, 지난 4월에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이 같은 ASAT 발사 시험은 매번 수많은 파편을 만들어 낸다. 중국도 지난 2007년 위성요격을 실험하며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 파편을 발생시켰고, 지난 10일 ISS는 이 파편을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해야 했다. 현재 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4개국이다.

우주 쓰레기 등 지구 주변에서 회전 중인 물체의 분포를 표현한 모식도. [노스롭 그루먼사·NASA 제공]

우주 쓰레기 등 지구 주변에서 회전 중인 물체의 분포를 표현한 모식도. [노스롭 그루먼사·NASA 제공]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미사일 시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연방 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잔해 물질의 궤도는 국제우주정거장 궤도와 멀리 떨어져 있다. 우주정거장은 안전지대에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의 이런 행보에 대해 “이번 시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투입하고, 이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맞대응을 나서며 미‧러 간 긴장 속에서 나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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