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달전 숨긴뒤 '좌표' 판다…100억대 마약 쥔 그들 수법

중앙일보

입력 2021.11.13 05:00

업데이트 2021.11.13 08:54

“마약상들이 한 달 전 미리 숨겨둔 ‘좌표’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서울, 부산, 창원, 제주 등 안 가본 곳이 없죠.” 

박성희 전남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이 마약 유통조직들의 신종 거래 방식을 설명한 말이다. 으슥한 거리에서 마약을 건네며 현금 뭉치를 건네받던 모습은 영화 속 이야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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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g까지 한 달 전에 숨겼다…마약 조직의 진화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에게 압수한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에게 압수한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 마약수사대는 13일 “텔레그램과 가상화폐를 이용해 마약을 판 A씨(27) 등 관리·운반책 5명과 구매자 14명을 검거하고 101억원 상당의 마약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필로폰 2.83㎏, 필로폰·MDMA 혼합물 1.1㎏, 케타민 505g, 엑스터시 1779정 등 1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경찰은 필리핀에 있는 ‘해외총책’이 국내 점조직을 이용해 전국 각지에 마약을 유통한 사실을 파악하고 검거에 나선 상태다.

경찰은 이들이 마약을 판매한 방식 자체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신종 수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장소를 지정해 미리 마약을 놓아둔 뒤 파는 방법을 썼다. 흔히들 ‘던지기’라고 부르는 방식은 마약 유통조직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도입됐다.

한 달 전에 마약 숨겨놓고 '좌표' 판매

SNS에 마약 광고를 올린 판매자와 실제 대화 캡처. 대포 통장을 권유하며 안심시킨다. 박해리 기자

SNS에 마약 광고를 올린 판매자와 실제 대화 캡처. 대포 통장을 권유하며 안심시킨다. 박해리 기자

이번에 검거된 일당들은 여기에 이른바 ‘좌표’를 찍어주는 수법을 더했다고 한다. 구매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전국 곳곳에 마약을 숨겨둔 뒤 장소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들은 구매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폐쇄회로TV(CCTV)가 없는 으슥한 뒷골목에 마약을 숨겨뒀다. 에어컨 실외기, 가스통 배관, 원룸 난간봉 등 곳곳이 마약 은닉장소로 이용됐다. 이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관리해오다가 구매자가 나타나면 이른바 ‘좌표’만 넘겨주고 돈을 받는 방식이다.

좌표는 마약의 양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됐다. 마약을 사려는 사람마다 원하는 양이 다른데 0.1g부터 5g 등 세부적으로 무게를 나눠 전국 곳곳에 보관하고 좌표를 관리했다.

박성희 마약수사대장은 “마약을 0.1g만 사겠다면 그만큼 마약을 보관된 좌표만 구매자한테 보내주는 방식”이라며 “좌표를 이용한 거래 수법으로 경찰 수사망을 따돌려 검거까지 매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왜 한 달 전에 숨겨뒀나…CCTV 삭제 기간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은 지난해 9월 “텔레그램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후 마약 유통조직들의 움직임을 관찰해오다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마약상들의 종적조차 찾기가 어려워서다.

이들은 우선 CCTV가 없는 곳에 마약을 숨겨두는 수법을 썼다. 경찰이 간신히 인근 CCTV를 확보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전에 마약을 숨겨둔 상태여서 자료 확보가 어려웠다. 통상적으로 CCTV 장치에 저장된 영상이 삭제되는 시점이 약 한 달이라는 점을 노렸다.

조그마한 의심에도 일당이 종적을 감춘 점도 수사를 어렵게 했다. ‘얼음’, ‘아이스’, ‘드럭’, ‘크리스탈’ 등 마약 거래 때 쓰는 은어를 헷갈리거나 직거래를 하자고 운만 띄워도 자취를 감췄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조금만 의심을 사도 ‘당신 경찰이지?’라며 텔레그램 방을 폭파했다”고 말했다.

0.1g 10만원부터 1g에 70만원 거래

마약 유통조직은 은어를 사용해 인터넷에 마약 판매 광고를 올렸다. 동시에 판매자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함께 올려두고 구매자와 접촉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마약은 많은 양을 살수록 싸게 팔았다. 필로폰 기준으로 0.2g은 20만원에 팔지만, 1g을 구매하면 보다 저렴한 70만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통상적으로 마약 투약량은 초범의 경우 0.03g을 1회분으로 잡지만, 상습 투약자는 내성이 높아져 0.1~0.2g을 1회분으로 본다.

구매자들은 마약을 식염수에 섞어 정맥주사로 투약하거나 가열한 후 연기를 들이마시는 일명 ‘후리베이스’라는 방법을 이용했다. 경찰은 이번에 검거된 마약 구매자의 경우 0.1~1g까지 비교적 소량을 구매했기 때문에 재판매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

구매자 대부분은 경찰에서 “처음 마약을 사봤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 마약사범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주사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대부분 초범이라거나 투약량을 줄여 진술하지만, 과거처럼 팔에 주사 자국 등이 남는 경우도 적어 육안으로는 투약량이 얼마나 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

마약밀매 조직 뿌리가 보이스 피싱?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에게 압수한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이 마약유통조직에게 압수한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마약. 사진 전남경찰청

경찰은 지난 4월 수사 한 달여 만에 서울에서 마약 유통조직 용의자를 체포했다. 이후 이 조직이 서울과 부산, 광주, 창원, 제주 등에 점조직을 만들어 마약을 유통한 사실을 확인하고 일당 5명을 경기 일산과 전남 순천 등에서 모두 검거했다.

이들은 거래대금을 가상화폐로만 받았다. 비트코인이나 리플, 이더리움 등 인기가 높은 일명 ‘메이저 코인’으로만 거래했다고 한다. 구매자가 코인을 사용해 본 적이 없을 경우 가상화폐 구매대행 업체를 중간에 끼워 현금을 허위 명의의 무통장 거래로 받는 방식으로 돈을 세탁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의 범행 수법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매우 유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락책이나 판매책끼리 서로 얼굴도 모른 채 SNS로만 연락하고, 마약유통은 전국에 나뉜 점조직으로 관리한 것 자체가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법이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해봤던 사람을 스카우트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이스피싱의 성공률이 떨어지니 돈이 되는 마약으로 옮겨가는 추세라는 판단이다.

100억원어치인데…“빙산의 일각” 경고

마약유통조직 조직도. 사진 전남경찰청

마약유통조직 조직도. 사진 전남경찰청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마약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이들이 한 달 전에 숨겨둔 마약만을 판매한 것은 전국에 촘촘히 점조직을 깔아두지 않으면 불가능한 방식이어서다.

박성희 마약수사대장은 “마약 유통조직들은 적발된 것 외에는 절대 범행을 실토하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 마약도 있을 것”이라며 “마약을 0.1g 단위로 소량 분류해 전국에 숨겨온 수법을 감안하면 오랜 시간 조직이 유지됐을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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