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말로만 진보·보수’ 타령은 이제 그만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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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정치엔 진보·보수가 있을지 몰라도 정책은 더 이상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20세기 냉전 시대의 유산인 보혁 대결 구도가 한국 정치에선 여전히 유효할지 몰라도 21세기 탈냉전의 뉴밀레니엄 시대에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는 정책 경쟁은 이미 이념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이젠 누가 더 유능한지, 누가 더 정확한 진단과 실천 능력을 담보하고 있는지, 누가 더 실용적 접근으로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이런 구조에선 특정 진영의 뒷받침이 아무리 강고해도 ‘능력’ 없인 결코 성공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한국의 대선판은 어떤가. 잇단 실언 논란에 ‘묻지 마’ 지지와 비난, 네거티브 공방과 검찰 수사 변수까지. 이슈 하나하나가 ‘그들만의 싸움’일 뿐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정책 대결은 발붙일 틈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오로지 매일 쏟아지는 지지율 추이에 일희일비하며 숫자에만 연연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변수들로만 대선 승패가 결정될까. 선거가 임박하면 유권자들은 뭘 보고 선택하게 될까. TV 토론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순간 후보의 내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데도 끝까지 정책은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정책은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냐
유능함·실행력이 대선 승패 가를 것

정책은 수단과 실행력이 관건이다. 정책의 세계에서는 선의만으론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정확한 원인 분석에 근거해 정교한 시뮬레이션과 액션 플랜으로 최적의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실행 능력도 필수다. “미국의 경영자 중 95%는 옳은 말만 하고 5%만 그 말을 실행에 옮긴다”는 월가의 경고는 ‘공약(空約)’만 남발하는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도 “성공한 자들의 공통분모는 결정과 실천 사이의 간격을 아주 좁게 유지했다는 점”이라 하지 않았나.

정책 성과가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 닿기까지는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의도에서 정책이 전혀 인기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웬만해선 공들인 만큼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무늬만 진보·보수’가 득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 평론가를 자처하는 자들부터 캠프 주변을 기웃거리며 한자리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 무리, 공부는 뒷전이고 고성과 삿대질에만 익숙해진 정치인들까지. 요즘 여의도에 회자되는 ‘하이에나’와 ‘파리떼’도 말로만 진보를 외치고 입으로만 보수를 주장하는 속칭 ‘정치 자영업자’의 또 다른 변종들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한들 집권을 꿈꾸는 후보와 정당마저 말로만 진보·보수 타령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야 되겠는가. 산적한 국내외 현안에 맞서 ‘실행 가능한’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대선후보가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야 후보와 정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네거티브의 칼을 가는 게 아니라 소속 의원과 캠프 관계자들에게 밤을 새워서라도 정책을 개발해 대안 세력임을 입증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비판하긴 쉬워도 대안을 만드는 건 열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법. 하지만 그 노력은 늘 보상을 받았던 게 역사의 경험칙이었다.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기 힘들다. 각 당과 후보들의 대선호(號)도 정책의 내공이 깊어야 거센 파도를 헤치며 넉 달 뒤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파일도 파일 나름이다. 전투에서는 ‘네거티브 파일’로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쟁의 승패는 결국 어떤 ‘국정 파일’을 갖고 있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다. 얕은 물가에 찰랑이는 눈앞의 파도를 보고 승리를 자신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원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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