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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매운’ 싱글몰트 K위스키 꼭 만들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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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22면

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홍보·마케팅 책임자 김유빈 과장, 창립자 도정한 대표,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왼쪽부터). 전민규 기자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홍보·마케팅 책임자 김유빈 과장, 창립자 도정한 대표,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왼쪽부터). 전민규 기자

100% 보리로 몰트(맥아·분쇄한 보리에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붓고 3일간 발아시킨 일종의 엿기름)를 만들고, 물과 효모를 섞어 발효·증류·숙성시킨 위스키를 ‘몰트 위스키’, 그중에서도 한 증류소에서 만든 것을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량이 적어서 가격은 높지만 해당 증류소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맛과 향이 뛰어난 게 특징이다.

지난 9월 9일 새벽 0시.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Three Societies)’ 앞에 30여 명이 줄을 섰다. 오전 9시부터 판매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KI·ONE)’ 한정판 200병을 사려는 이들이다. 9시 판매 전에 인파는 이미 200명을 넘어섰다.

‘기원’은 ‘쓰리소사이어티스’가 2020년 설립 후 처음 내놓은 제품이다. 지난해 7월 7일 증류한 위스키 스피릿을 오크통에 넣고 올해 9월 3일 통에서 꺼내 병입했다. 위스키 강국 스코틀랜드에선 법률상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시켜야 위스키라 부를 수 있지만, 한국에선 1년 이상 숙성부터 위스키로 부를 수 있다. 이름은 한자 풀이를 이용해 ‘시작’과 ‘바람’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

MS 한국지사 최연소 임원 지내기도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꺼내는 도정한 대표. 전민규 기자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꺼내는 도정한 대표. 전민규 기자

‘쓰리소사이어티스’ 창립자는 도정한(47) 대표다. 모델 송경아씨의 남편으로도 알려진 그의 커리어는 꽤 독특하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아리랑 방송에서 기자·앵커·뉴스 PD로 일했다. 글로벌 홍보대행사 에델만 코리아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사 한국지사 최연소 임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13년 돌연 이 화려한 경력을 박차고 나와, 이듬해 수제맥주 양조장 ‘핸드앤몰트’를 차렸다. “취미로 만들어본 맥주의 세계에 홀딱 빠졌는데,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외신 기자의 소리에 도전의식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한국 수제 맥주 부흥기에 선두주자로서 연 매출 60억원을 올렸던 도 대표는 2018년 오비맥주 글로벌 본사인 세계 최대의 맥주기업 AB인베브에 핸드앤몰트를 매각했다.

“맥주 업계에서 ‘돈만 좇는 배신자’ 소리도 들었죠. 하지만 맥주 양조장을 시작할 때부터 제 목표는 맛있는 맥주를 저렴하게, 어느 곳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 혼자서는 그게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확실한 인프라를 가진 회사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거죠.”

이후 도 대표는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위스키 제작자’에 인생 좌표를 다시 찍었다. “공항 면세점에 들를 때마다 가까운 일본과 대만에선 히비키, 야마자키, 카발란 등 전 세계가 인정하는 위스키를 만드는데 한국산은 왜 없을까 궁금했죠. 우리 전통술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외국인과 한 잔 나누기에는 역시 그들에게 친숙한 위스키가 좋거든요. 그들과 함께 자연스레 우리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 생각했죠.”

디스틸러는 증류과정에서 위스키의 맛과 향을 제조하는 역할을 한다. 전민규 기자

디스틸러는 증류과정에서 위스키의 맛과 향을 제조하는 역할을 한다. 전민규 기자

‘쓰리소사이어티스’란 이름은 3개의 사회라는 의미다. 첫째, 한국 땅에서 좋은 물과 기후를 바탕으로 한국 사람들이 만든다. 둘째, 미국은 위스키 숙성에 가장 중요한 오크통을 공급하는 동시에 비즈니스에서도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나라다. 셋째, 위스키 제조 기술과 노하우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디스틸러(위스키 등의 증류주 메이커)가 지휘한다. 브랜드 로고인 방패 문양에 한국·미국·스코틀랜드 3국의 상징적인 동물 호랑이·독수리·유니콘이 배치된 이유다(‘기원’ 시리즈 첫 번째 버전 패키지에 호랑이가 그려진 것도 같은 이유인데, 2022년·23년 연이어 유니콘·독수리 버전이 출시될 예정이다).

42년 경력의 디스틸러인 앤드류 샌드(58)는 1980년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위스키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다. 글렌리벳 증류소를 소유한 시바스 그룹 산하 증류소들에서 기술을 쌓은 그는 2011년 자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고 전 세계 위스키 증류소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도 대표와 앤드류 사이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도 대표의 초대로 한국에 들어온 앤드류를 위한 첫날 저녁 식사 메뉴는 매운 오징어볶음이었다. 도 대표는 “이날 식당에서는 저로선 난생 처음 본 싸움판이 벌어졌다”며 “술병이 날아다니고 주먹다짐에 피가 튀는데도 앤드류는 아랑곳않고 오로지 오징어볶음에 홀려있었다”고 했다. 앤드류 역시 그때를 기억하며 “그까짓 주먹싸움 정도는 스코틀랜드에선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고(웃음), 오징어의 매운맛이 내게는 더 신기했다”고 했다. 오징어는 이렇게 또 한 번 세계인을 사로잡았고, 앤드류는 한국 여인과 사랑에 빠져 올해 1월 결혼에 골인했다. 매운 음식 홀릭도 여전하다.

브랜드 로고엔 호랑이·독수리·유니콘

한국적 위스키를 위해 실험적으로 복분자 술을 담았던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중이다. 전민규 기자

한국적 위스키를 위해 실험적으로 복분자 술을 담았던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중이다. 전민규 기자

앤드류는 인터뷰에서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기온 변화가 커서 오크통이 숨 쉬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며 한국산 위스키의 성공을 자신했다. 위스키를 품은 오크통은 더운 날에는 팽창하면서 술을 빨아들이고, 날씨가 추워지면 수축하며 술을 뿜어낸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큰 한국의 기후는 오크통의 수축·팽창 강도와 속도를 더욱 높인다. 앤드류에 따르면 한국이 스코틀랜드보다 숙성 속도가 2~3배 빠르다. 실제로 처음 오크통에서 꺼낸 ‘기원’은 1년 숙성 위스키지만 외국 품평회에서 전문가들의 평가는 “5~6년 숙성시킨 위스키의 맛과 향을 지녔다”였다.

‘한국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위한 도 대표와 앤드류의 노력은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거대한 증류기에서도 빛난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증류기 회사의 장인이 직접 망치로 두드려가며 만든 100% 동(銅) 소재 증류기다. 위스키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증류기는 증류소마다 모양이 다 다르다. 앤드류와 도 대표가 원하는 맛과 향을 반영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기 역시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시스템으로 제작비만 20억원이 넘는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첫 번째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타이거’ 에디션. 전민규 기자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첫 번째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타이거’ 에디션. 전민규 기자

도 대표가 생각하는 한국산 위스키의 개성은 ‘맛있게 매운맛’이다. 한식의 매운맛은 이미 유명하다. 때문에 위스키 끝맛의 여운에 K위스키만의 매운맛을 내려고 노력 중이다. 구독자 21만 명의 유튜브 방송 ‘주류학개론’ 운영자는  “숙성기간에 비해 색깔이 진하고, 캐러멜·바닐라·나무 향이 풍부하다. 후추 같은 스파이시한 느낌이 훅 올라와 약간 매운 맛도 느껴진다. 도수가 56.2로 세서 부드러움이 적은 게 아쉽다”고 평했다.

기본적으로는 새로 만든 오크통, 미국의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 스페인의 셰리주를 담았던 오크통 3가지 종류를 사용하지만 ‘한국산 위스키’라는 수식어를 더 매력적이고 확실히 하기 위해 신갈나무·떡갈나무로 배럴 2개를 만들고 그 안에서 숙성 실험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농업법인도 설립했다. 보리를 직접 재배해 한국산 보리와 몰트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다.

도 대표는 “부담도 크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는 좋은 위스키 없어?’라고 물을 때 자랑스럽게 추천할 만한 술을 꼭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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