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잎비' 내립니다…늦가을 큰 은행나무들의 선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13 00:02

업데이트 2021.11.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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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02면

1000년 은행나무 이야기

냄새 참 고약하다면서도, 사람들은 기꺼이 다가간다. 이렇게 후각적으론 못마땅하나 시각적으론 융숭한 대접을 받는, 그래서 이 만추(晩秋)에 감성적 교감을 자아내는 나무가 있다. 은행나무다.

강원도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노랗게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노랗게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구에서 3억년간, 원자폭탄 떨어진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았다. 중국 태생의 이 나무는 주로 한·중·일 3국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해진 삼국시대 초기에 온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낙산사 화재 등 숱한 재난이 다가올 때 울었으며, 향교와 사찰에 곧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24그루. 고승이 지팡이를 꽂자 자랐다는 전설 혹은 설화를 여러 은행나무가 공동으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강원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지난 11월 5일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지난 11월 5일 모습. [연합뉴스]

늦가을, 동네 우체국 앞 은행나무는 털갈이하듯 제 몸의 잎을 다 떨어뜨렸다. 봄에 벚나무의 꽃비가 있듯, 가을엔 은행나무의 ‘잎비’가 있다. 아직 은행나무의 화려하고도 장엄한 잎비를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주말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서두를 필요는 없다. 소나기 치듯 잎을 털어낸 뒤의 은행나무도 그  나름 수려하고도 초연하니까.

# 전설·설화 담긴 은행나무 많아

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이 넘는다. 김홍준 기자

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이 넘는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로 향하는 도로 3㎞가 꽉 막혔다. 양평군청에 따르면 11월 첫 주말인 지난 6, 7일 용문사를 찾은 이들은 1만2000여 명. 경기도 구리시에서 온 임종현(25)·조승윤(25)씨는 “이렇게 큰 은행나무는 처음인데, 우듬지(나무줄기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목이 아플 정도”라며 감탄을 했다.

용문사 은행나무의 높이는 42m. 아파트 층수로 따지면 14~15층이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 키가 67m인 때가 있었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는 “문화재청의 2002년 12월 보고서는 67m라고 표기했는데 42m가 맞다 ”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의 문화재연감을 보면 ‘동양 최고 높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현재 양평군청 홈페이지에서도 ‘60m, 동양 최고 높이’로 소개하고 있다. 오류다. 일본 미야자키 현에 48m 은행나무가 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지난 11월 7일 용문산 용문사-상원사 갈림길에서 본 용문사 은행나무. 김홍준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지난 11월 7일 용문산 용문사-상원사 갈림길에서 본 용문사 은행나무. 김홍준 기자

용문사 은행나무는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자 자랐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향하면서 심었다는 설이 있다. 전자대로라면 이 나무는 1300살이요, 후자라면 1100살이다. 하지만 고규홍 칼럼니스트는 “기록은 없지만, 전문가들이 나무의 생육으로 봤을 때 1100살에 무게가 실린다”고 밝혔다. 세종 때 당상관에 봉해진 최초의 ‘벼슬 나무’가 이 용문사 은행나무다. 소란스러운 인파의 그림자를 사뿐히 벗어나 산에 들어가자. 상원사 갈림길, 은행나무를 굽어볼 수 있다. 12일 현재 은행 잎은 대부분 떨어진 상태다.

넉넉한 품을 보여 주는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김홍준 기자

넉넉한 품을 보여 주는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김홍준 기자

강원도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의 유주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의 유주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복작거리기로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도 만만치 않다. 채범식(61) 반계1리 이장은 “코로나 전에는 한적했는데, 작년에는 방문자가 3배 늘더니, 올해는 평일·주말 구분 없이 4배 늘어난 하루 4000명”이라 밝혔다. 지난 7일 오후 4시경 반계리 은행나무 앞에는 1000여 명이 모였고 경찰까지 나와 차량 통제에 나서는 풍경이 벌어졌다.

채 이장은 “음식점도 없고, 편의점도 1.5㎞ 가야 하나 나오는데 사람이 이렇게 몰리는 이유는 은행나무의 아름다움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이 수령 800년, 높이 32m 나무를 은근히 자랑했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높다랗다면, 반계리 은행나무는 품이 넉넉하다. 한쪽과 그 반대쪽의 물듦이 다를 정도다. 지나가던 스님이 지팡이를 꽂자 자랐고, 흰뱀이 안에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왜 사람이 몰릴까.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3~4인 가족이나 연인끼리 소규모로, 타인과 비대면인 자가용으로, 탁 트인 생태 중심의 소형 여행을 하는 게 코로나 시대 여행 트렌드”라고 밝혔다.

충북 괴산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의 다양한 모습. 김홍준 기자, [연합뉴스]

충북 괴산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의 다양한 모습. 김홍준 기자, [연합뉴스]

충북 괴산군의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도 명성을 얻고 있다. 해 뜰 때 물안개, 해질 때 조명이란 자연과 인공의 레시피를 곁들인 은행나무 성찬이 가로수처럼 펼쳐진다. 출사 나온 한 50대 남성이 “너무 알려졌는데…”라며 걱정할 정도다.

큰 은행나무는 고고하다. 그래서 비교적 한적하게 멀리서, 가까이서, 오래 지켜보는 것도 좋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60억 원을 들여 목숨을 건졌다. 1980년대 후반, 임하댐 건설로 나무는 수몰 위기에 처했다. 댐 건설을 주도한 이상희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과 나무 이식 전문가 이철호씨가 주민들과 나섰다. 나무를 들어 올리니 680톤. 4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나무는 자리를 옮겨 700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1980년대 후반 60억원을 들여 원래 있던 용계초등학교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몰 위기에서 벗어났다. [중앙포토]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1980년대 후반 60억원을 들여 원래 있던 용계초등학교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몰 위기에서 벗어났다. [중앙포토]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울 문묘, 인천 강화 전등사,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은행나무는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부와 수행, 일상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를 뿜는 열매가 맺히니, 제발 열매를 맺지 않게 해달라고 제사를 거듭 드리자 ‘트랜스젠더’ 나무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나무의 성별을 바꿀 수는 없다.

고규홍 칼럼니스트는 “이 은행나무들은 냄새는 고약하지만, 나무를 베지 않고 함께 살겠다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주의 사상이 배어든, 무게감 있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천연기념물 지정 은행나무 24그루

충북 괴산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안에 있는 1000년 은행나무 밑으로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충북 괴산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안에 있는 1000년 은행나무 밑으로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자칫 서두르면 시속 30㎞ 제한 속도에 걸릴 수 있는 1000년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가 학교(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청안초 관계자는 “학교가 1911년에 세워졌으니 은행나무는 자신의 일생 10분의 1 넘게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즐거워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교목인 이 은행나무 밑으로, 아이들이 뛰어간다. 38명의 전교생 중 2명이다.

충남 금산군 요광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통영대전고속도로 옆에 있어 자나치기 쉽다. 김홍준 기자

충남 금산군 요광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통영대전고속도로 옆에 있어 자나치기 쉽다. 김홍준 기자

영국사(충북 영동군 양산면), 보석사(충남 금산군 남이면), 요광리(충남 금산군 추부면) 은행나무도 1000년 넘게 살아왔다. 김철환 영동군 문화해설사는 “영국사 은행나무는 삼대(三代) 은행나무라고 부른다”며 “엄마·자식·손자 은행나무가 한 나무에 있다”고 말했다. 원래의 나무에서 다른 한 나무가 자라 자식이 됐다. 자식 은행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는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하나의 나무로 자라 손자가 된 것이다. 기이하다.

충북 영동군 영국사의 1000년 은행나무는 3대(代) 은행나무라고도 부른다. 본래의 나무에서 자식 나무가 자라고, 자식 나무에서 뻗은 줄기가 땅을 뚫고 다시 나와 손자 나무(사진)로 자랐기 때문이다. 김홍준 기자

충북 영동군 영국사의 1000년 은행나무는 3대(代) 은행나무라고도 부른다. 본래의 나무에서 자식 나무가 자라고, 자식 나무에서 뻗은 줄기가 땅을 뚫고 다시 나와 손자 나무(사진)로 자랐기 때문이다. 김홍준 기자

충북 영동군 영국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김홍준 기자

충북 영동군 영국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김홍준 기자

이 1000년 은행나무 세 그루는 각각 산비탈에, 계곡에, 들에 자리 잡고 있다. 고규홍 칼럼니스트는 “은행나무는 독립적으로 서식해서 자라기 어려워 누군가 심어야 크는데, 산이나 들에 홀로 서 있다면 과거 사찰이나 주거지 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은행나무가 그렇다. 생뚱맞을 정도로 산에 홀로 있다. 이 은행나무 수령이 1500년으로 우리나라 최고란다.

 경남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높이 38m에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 [뉴스1]

경남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높이 38m에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 [뉴스1]

충남 금산군 보석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지난 10월 대신제를 지낸 직후의 모습이다. 김홍준 기자

충남 금산군 보석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는다. 지난 10월 대신제를 지낸 직후의 모습이다. 김홍준 기자

이은현(75)씨는 30여년간 매년 이맘때 영국사 은행나무를 촬영한다. 그가 용문사, 반계리, 용계리, 운곡리 은행나무(경남 함양)와 함께 추천해준 보석사 은행나무 앞. 근처 학교의 선생님이 제자와 조곤조곤 말을 나눈다. 그리고 둘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 “잘할 거야. 그치?” 아이는 크게 끄덕이고 하늘을 본다. 하늘을 봐야 나무를 본다.

2021년 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은행나무. 지난 11월 4일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2021년 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은행나무. 지난 11월 4일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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