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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착란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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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종주
임종주 기자 중앙일보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트럼프 돌풍이 몰아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명절 풍속도를 바꿔놨다. 정치 성향이 다른 가족들은 함께 보낸 시간을 줄였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그해 추수감사절 미국 가정의 만찬 시간은 평균 4.3시간이었다. 그런데, 지지 후보가 엇갈린 가정의 경우엔 그렇지 않은 집에 비해 30분에서 50분가량 짧았다.

밥상머리는 곧잘 정치 싸움장으로 변했다. 생각이 다른 가족과의 마뜩잖은 자리가 과음으로 이어져 논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과신한다. 신종 병리 현상으로 꼽히는 추수감사절 착란 증후군이다.

올해도 긴장도가 팽팽하다. 정치 얘기는 삼가라는 십계명이 난무하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아프간 철군 혼란과 코로나 사태 장기화, 복지예산 처리 지연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진다. 물류 대란 속에 물가는 계속 오른다. 대목을 앞두고 일손을 못 구해 아우성들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바이든 대통령은 설상가상으로 텃밭이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까지 놓쳤다.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2024년 대선에도 먹구름이 밀려온다. 보수층의 압력에 노출된 바이든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더 공고해질 것이다. 그 흐름에서 안보 정책의 틀이자 전략적 지침인 ‘국방안보 전략 보고서’와 ‘핵 태세 검토 보고서’, ‘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가 명절 이후 줄줄이 나온다. 주한미군 역할 변화로 이어질 ‘전 세계 미군 배치 태세 검토’도 베일을 벗는다. 한반도의 명운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들이다. 유럽과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핵전략이 냉전 이후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선제 불사용’ 정책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류가 감돌자 반대 로비에 나섰다고 한다. 적에 대한 도발 억제 효과를 떨어뜨리고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우리 대선 무대에선 외교·안보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논쟁은 뒷전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실천’(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등 공약은 나오고 있지만, 구색 맞추기 수준 이상인지는 의문이다. 워싱턴 고위 소식통은 “미국은 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쿼드 정상회담에 이어, 쿼드 국방장관 회담과 산업장관 회담도 연이어 열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국익은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추수감사절은 이달 넷째 목요일로 다가왔다. 이미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시작되는 등 명절 분위기는 차츰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바라보기엔 못내 찜찜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