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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 문화대혁명까지 긍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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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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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중공)이 11일 40년 만에 새 역사 결의를 채택하고 시진핑(習近平·68·얼굴) 총서기의 ‘시진핑 사상’을 중화 문화와 중국 정신의 정수라고 평가했다. 이날 폐막한 중공 19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논의한 결과를 정리한 공보에서다. 이로써 시진핑 주석은 내년 가을 열리는 20차 당 대회에서 세 번째 총서기 연임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

이날 관영 신화사는 나흘간 열린 6중전회의 공식 회의록 격인 7400여 자의 공보를 타전했다. 공보는 전체회의에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역사 결의)를 심의 통과했다고 전했다. 이번 ‘역사 결의’는 지난 두 차례와 달리 ‘과오’를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결의안 명칭부터 잘못을 뜻하는 ‘문제’를 ‘성취’가 대신했다. 특히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마오쩌둥의 치세를 놓고 “중국 인민은 구세계를 잘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신세계 건설을 잘했고,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 주석은 집권 직후부터 역사를 정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며 “대신 역사 허무주의를 앞세워 오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대국이 부상할 때는 과거 역사를 성취와 함께 잘못까지를 균형감 있게 성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이번 ‘역사 결의’를 비판했다.

시진핑, 이젠 마오쩌둥과 동급 지도자 … 장기집권 기반 마련

중국공산당 19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6중전회) 폐막일인 11일 베이징에 있는 공산당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공산당 19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6중전회) 폐막일인 11일 베이징에 있는 공산당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6중전회 공보는 압도적인 시진핑의 위상을 보여줬다. 시진핑 이름은 총 17차례 등장해 마오쩌둥(毛澤東) 일곱 차례, 덩샤오핑(鄧小平) 다섯 차례를 능가했다. 중공 문건에 등장하는 핵심 지도자의 이름 횟수는 당시 정치적 위상을 반영한다. 특히 2012년 집권 이후 시 주석이 재임한 9년간의 업적을 서술한 부분이 공보 전체의 40%가량을 차지했다. 공보는 “당 중앙은 전체 당과 군, 전국 각 민족 인민이 더욱 긴밀하게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단결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 관철할 것을 호소한다”며 사상 통일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5년 전 열린 18기 6중전회에서 당의 ‘핵심’ 지위를 차지하며 이듬해 19차 당 대회에서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당 헌법에 올리는 기반을 닦았다.

공보에는 ‘역사의 주동 정신’ ‘역사성 변혁’ 등 시 주석을 향한 찬사가 가득했다. 공보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 위대한 역사의 주동 정신, 거대한 정치적 용기, 강렬한 책임과 담당을 가지고 국내와 국제의 대세를 총괄했다”며 “오랜 기간 해결하려 했지만 못했던 많은 난제를 해결하고, 과거에 이루지 못한 큰일을 이룩했으며, 당과 국가 사업에 역사적 성취를 추동했고 역사적 변혁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6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을 능가하는 당 장악력을 노렸다. 대만 중앙사는 ‘차오잉간메이(超英赶美·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격한다)’라는 1950년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의 표어에 빗대어 “차오덩간마오(超鄧赶毛, 덩샤오핑을 따라잡고 마오쩌둥을 추격한다)” 수준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이번 ‘역사 결의’로 만든 후광을 이용해 스스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혹은 자신이 쓰러질 때까지 재집권 기간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공산당 역대 ‘역사결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중국공산당 역대 ‘역사결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장기집권 기반을 닦은 시 주석은 덩샤오핑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도한 빈부격차를 초래한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더불어 모두 함께 부자가 되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로 대체한 이유다. 20차 당 대회의 핵심 이슈가 될 공동부유에 대해서는 12일 6중전회 기자회견에서 한원슈(韓文秀) 중앙 재경판공실 부주임이 설명할 예정이다.

이날 통과된 ‘역사 결의’는 중공 100년 역사상 세 번째 결의다. 첫 번째 결의는 마오쩌둥 주도로 44년 5월 옌안(延安)에서 개막한 6기 7중전회에서 11개월에 걸친 격론 끝에 이듬해 4월 20일 통과됐다. 마오는 통과 사흘 뒤 7차 당 대회를 열고 자신의 이름을 명기한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헌법에 기재하면서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두 번째 결의는 덩샤오핑 주도로 81년 6월 폐막한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됐다. 마오와 문화대혁명의 공과를 놓고 ‘4000인 회의’로 알려진 치열한 토론을 거쳐 “마오쩌둥은 공적이 제일이고, 잘못은 두 번째”라는 결론에 합의했다. 당시 6중전회에서 덩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거머쥐며 당내 일인자 지위를 확립했다.

문화대혁명

1966~76년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 마오는 50년대 말 대약진운동 실패로 위기에 몰리자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고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 활용했다. 300만 명의 당원이 숙청됐으며, 경제는 피폐해지고 혼란과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마오 사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이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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