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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남중국해 공방이 한반도 해역 풍랑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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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중 남중국해 충돌 위기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뒤쪽)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카가함이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 미 해군]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뒤쪽)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카가함이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 미 해군]

“남중국해의 풍랑은 계속 높게 일겠습니다.” 일기예보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결적 태세를 취하며 상대 입장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한 남중국해에서 양국 충돌의 가능성은 급격하게 높아질 것이란 뜻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항행의 자유작전(FONOP)과 지난 9월부터 시행 중인 중국의 해상교통안전법은 모두 상대를 겨냥한 조치다. 특히 안전법의 경우 군사용뿐 아니라 비(非)군사용 선박도 ‘위험성’이 있으면 중국에 통보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물론 미국은 중국에 통보할 리 없다. 또 중국 인공섬의 ‘영해’를 인정하지 않기에 이는 또 다른 대립의 장(場)이 되고 있다.

남중국해의 가장 큰 이슈는 중국의 주권 주장 및 군사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거부전략 간 충돌이다. 중국은 9단선 주장 외에도 “국가의 주권과 안보 및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겠다고 공언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2014년 이후 이제까지 실효 지배 중인 7개 산호초를 매립해 군 장비 및 시설을 설치 중이다. 예를 들면 7개 인공섬 전부에 레이더 및 접안 시설을 설치했다. 또 그중 세 곳엔 활주로도 건설했다. 다만 현재까진 수송기 이착륙만이 가능하고 전투기 운용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다.

미, 쿼드·오커스 결성해 중국 견제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으로 대응
미·중 충돌 전선이 남중국해 넘어
대만해협과 한반도 해역도 위협

지난 3월 필리핀의 전관경제수역(EEZ) 안에 위치한 휫선(Whitsun) 암초 인근 해역에 중국 해상민병대를 포함한 어선 220여 척이 정박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은 모두 어선이고 풍랑 때문에 대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리핀은 풍랑은 지나갔고 어로 활동이 없는 무장 선박이며 인근 암초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다고 반박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중국군의 ‘회색지대(전쟁 직전의 낮은 긴장 행위)’ 전략으로 보인다. 중국군의 처음엔 가볍게 그러나 뒤엔 묵직하게 나가는 전경후중(前輕後重) 전통을 볼 때 ‘해상민병대→해양경찰→해군’ 순이 예상되는 것이다.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떼지어 정박 중인 중국 선박들. [EPA=연합뉴스]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떼지어 정박 중인 중국 선박들. [EPA=연합뉴스]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한 미국의 비판에 대해 중국은 ‘평화적 이용’과 재난 발생 시 ‘긴급 구호소’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이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기 위해 해방군보를 포함한 관영언론에 소규모 도서관을 설치, 운용하는 사진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도서관은 시사(파라셀)군도의 융싱(우디)도에 설치됐는데 이 섬엔 레이더·미사일 기지와 3000m 이상의 활주로도 깔려있다. 중국 남단에 위치한 하이난섬에서 융싱도까지 거리는 직선으로 334㎞로 전투기 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이난섬에서 난사(스프래틀리)군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쩡무안사(제임스 암초)까지는 무려 1800㎞로 전투기의 작전범위를 벗어난다. 미국은 이들 인공섬이 모두 고정 타깃이라 필요 시 폭격을 통해 초토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정례적으로 문제로 삼는 이슈는 양측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명목으로 남중국해에 구축함을 파견하면서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비행과 항행, 그리고 작전”을 한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며 중국의 인공섬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꾸준히 미국의 행동에 맞불을 놓고 있는데 미 군함의 무단 진입을 추적·퇴출시켰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이에 미국은 다시 중국의 주장이 ‘틀렸다(false)’며 미 군함은 어느 국가의 영토에서도 퇴출당하지 않았다고 팽팽한 기(氣)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눈여겨볼 건 양측의 공방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세 차례에 불과했던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이 2020년엔 아홉 차례, 그리고 올해 1~9월 사이 벌써 여덟 차례나 전개됐다. 우리 입장에선 나날이 심각해지는 남중국해 상황을 다른 해역, 즉 대만해협과 동중국해(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 그리고 한반도 해역 등의 상황과 연계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대만해협은 남중국해로 향하는 통로일 뿐 아니라 중국이 정례적으로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해·공군 전력을 진입시키며 긴장을 높이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중국 공군의 대만 ADIZ 진입은 380여 회였는데 올해는 10월 한 달간 196회 등 열 달 동안 벌써 700회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또 동중국해의 ‘분쟁화’를 시도 중이다. 특히 센카쿠 열도가 중국의 영해 내에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의 실효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2020년 8월 미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를 규탄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양자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한반도 해역은 서해와 동해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해의 경우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외에도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중 간 영해 경계도 획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동경 124도에 대한 중국 해군의 활동을 고려할 때 이슈별로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중국과의 ‘해군회의’ 개최를 통해 일괄 타결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 분포. 미국은 필요 시 폭격을 통해 이들 인공섬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 분포. 미국은 필요 시 폭격을 통해 이들 인공섬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한편 동해에선 중국 잠수함의 활동이 용이할 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의 합동 작전 역시 심심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도 중·러 ‘해상연합-2021’ 훈련이 지난달 14∼17일 연해주 남쪽 해역에서 실시됐다. 이처럼 각 해역 간의 연계성과 해역 내 갈등과 관련된 당사국들의 입장, 그리고 중국의 공세적인 해양 정책 등을 고려할 때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공방이 거칠어질수록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한반도 해역에서의 군사적 갈등 역시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협의체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국가 간 협력을 구체화할 경우 중국은 이를 자국 핵심이익에 대한 도발로 인식하고 더욱더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쿼드와 오커스는 중국과 러시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중·러 양국의 합동 훈련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풍랑이 대만해협과 동중국해를 넘어 혹여 한반도 해역에까지 밀려들 가능성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세계 주요국은 왜 중국을 싫어하나?

스티븐 월트 미 하버드대 교수는 힘·능력(power· capability)뿐 아니라 위협(threats)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덩치가 커도 위협적이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은 덩치도 크고 대외적으로 위협적이다.

중국 당사(黨史)를 오래 연구한 안치영 인천대 교수는 중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동이 외부의 우려를 낳았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늑대외교(戰狼外交)다. 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일대일로’‘인류운명공동체’ 등 많은 언행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과 같은 ‘오랑캐’들의 합창을 가장 두려워했다. 간헐적으로 발간되는 중국 『국방백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테마가 ‘외환(外患)’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강적이 있고 대내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사회 안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은 어떤가? 미국과 호주 그리고 캐나다의 대중국 인식은 지난 5년간 급속히 악화했고 유럽의 주요국도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 등이 이 범주에 속하는데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자가 80% 이상이다. 가장 부정적인 인식은 일본으로, 응답자 10명 중 9명 이상(91%)이 중국을 ‘싫어한다’(dislike)고 대답했다. 한국의 경우도 대중 인식이 악화 중인데 4명 중 3명(75%)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조사됐다.

최근 한국 내 학계와 재계의 ‘중국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빙하기’를 맞은 모양새다. 내년 8월 24일이면 한·중 수교 30주년이라 정부 간 공식 차원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의 냉담한 대중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새로운 30년’의 시작이라는 자세로 하나씩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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