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이나인사이트

대만이 무너지면 역내 다른 국가는 안전한가

중앙일보

입력 2021.12.01 00:35

지면보기

종합 26면

출렁이는 미-중-대만 삼각관계

지난달 초 미 의회 대표단이 대만의 차이잉 원 총통을 예방했다. 차이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공격하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대만중앙통신 캡처]

지난달 초 미 의회 대표단이 대만의 차이잉 원 총통을 예방했다. 차이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공격하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대만중앙통신 캡처]

대만해협의 격랑이 심상치 않다. 중국이 연일 무력시위 강도를 높이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만방어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맞춰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미군의 대만 주둔 사실을 흘렸다. 그러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불장난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중-대만의 ‘삼각관계’에서 칼자루를 쥔 미국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변심을 제국주의 속성의 재발이라고 분노한다. 하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로 너 때문’이라고 중국을 비난한다. 문제는 이들의 다툼이 대만해협을 벗어나 동아시아, 나아가 한반도 안보상황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평화해결 믿지 않는 미국
대만에 무기 팔며 생존공간 지원
시진핑 “머리 깨지고 피 흘릴 것”
차이잉원 “대만 수호는 세계 임무”

미국은 왜, 어떻게 변하고 있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대만문제의 부상은 당연하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이후에도 대만을 ‘사실상의 주권국’으로 간주해왔다. 중국을 의식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바이든 정부가 가치·이념·기술 동맹의 다자차원으로 반중 전선을 확대하면서 미국은 대만을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지칭한다.

미국의 새 대만정책은 중국이 대만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란 기대를 포기하고 대만과 관련한 내부규제를 완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은 이미 미·중 관계의 기초인 ‘3개 공보(公報)’에 명시된 대만의 기존체제 유지, 방위공약, 무기판매 등의 합의사항을 재검토하는 동시에 관계 증진을 위한 법적 조치를 마련했다. ‘타이베이법(TAIPEI Act)’을 통해 대만의 국제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무기판매 축소를 명시한 1982년의 ‘8.17 공보’와 각종 비밀 외교문서까지 공개하며 중국의 약속 불이행과 사실 왜곡을 비난한다.

미국이 대만정책을 수정한 이유가 중국 때문임을 강조한다. 특히 1972년 ‘상하이 공보’와 79년 ‘수교 공보’의 핵심 합의인 ‘양국 이익과 세계평화 증진’을 중국이 크게 훼손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의 기존 합의보다 대만에의 ‘방어용 무기 제공’과 ‘제반 위협의 대처능력 유지’ 필요성을 명시한 ‘대만관계법’을 토대로 새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만에 제공할 무기의 양과 질은 중국이 하기에 달렸다고 경고한다.

시진핑의 전략적 대응과 선택지

미국은 대만문제를 장기간 방치했다는 자성과 함께 대만과의 관계를 미·중 관계의 ‘일부분’이 아닌 독립적 관계로 전환 중이다. 또 국제사회가 민주주의 성공 사례인 대만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호소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최근 대만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세계보건총회(WHA)에 참여하지 못한 현실을 개탄했다. 이는 대만의 국제적 ‘생존 공간’ 지원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친대만 행보에 시진핑은 괴롭다. 바이든은 허풍선이 트럼프보다 훨씬 힘든 상대다. 바이든의 미소에 숨겨진 단호함과 중국을 꿰뚫어 보는 내공이 큰 부담이다. 자연히 시진핑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은 대만문제가 협상이나 타협·양보의 대상이 아니라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며 그 결기를 보여주는 무력시위를 계속할 것이다. ‘힘’에 의한 압박으로 대만의 이탈방지에 주력하겠다는 이야기다. 중국을 괴롭히는 세력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란 시진핑의 살벌한 경고는 미국과 대만을 함께 겨냥한 것이다.

차이잉원의 대응은

차이잉원 입장은 지난 10월 말 CNN과의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차이는 미·중 패권 경쟁을 계기로 대만의 외교적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민주체제 수호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공동 임무라고 역설한다. 자유대만이 무너지면 역내 다른 국가는 과연 안전할 것인지 반문한다. 또 중국의 무력공격 가능성이 있다며 가치동맹국 미·일의 지원을 기대한다. 미군 주둔 사실을 의도적으로 확인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대만문제, 어디로 가나

대만문제는 미·중 관계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미·중 관계의 향배가 대만문제의 변화 범위와 내용을 규정한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압박 일변도가 아니라 사안별 협력, 경쟁, 대결의 복합전략이다. 대만문제는 대결 영역이지만 미국의 전략은 대만독립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대만카드의 활성화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성향을 과도하게 부추겨 필요 이상으로 중국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 대만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현실적 능력에서도 미국의 대만정책엔 한계가 있다. 대만의 외교공간 확장은 미국 혼자서는 힘들며 국제사회의 호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결국 미국은 대만의 주권 회복과 국제사회 복귀를 위해 헌신할 의지와 능력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이게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상식적인 가드레일(commonsense guardrails)’ 설정과 대화를 제안한 이유다.

중국도 대만에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한 무력사용은 신중을 기할 것이다. 미·중 군사력 격차가 줄었다지만 전쟁의 달인 미국과 맞서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더욱이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만약 초기에 제압이라도 당할 경우 장기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은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2022년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반중 정서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그러나 중국의 자제력은 대만의 이탈 조짐과 미국의 방조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만도 미국의 반중 전략에 계속 편승만 할 수는 없다. 양안관계의 특수한 현실 때문이다. 인적 교류가 단절된 코로나 상황에서도 양안 교역은 크게 늘었다. 중국은 대만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다. 대만이 중국을 떠나 그만한 교역 및 투자 대상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수십만의 대만인들이 중국인 배우자와 결혼하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홍콩의 좌절을 지켜보며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허상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대만의 미래를 미국에만 맡길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다. 대만인의 독립의지와 그 실현 가능성은 별개이다.

이처럼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인 대만해협은 전쟁과 평화의 요인이 병존한다. 한데 중국의 무력시위와 군사적 긴장에만 이목이 쏠리고 양안관계의 고유한 특성과 현실이 과소 평가된다. 양안 사이엔 타협불가의 정치안보 사안만 있는 게 아니다. 뼛속까지 독립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차이잉원도 시진핑과의 대화를 원한다. 결국 중국과 대만은 통일도 아니고(不統), 독립도 아닌(不獨) 평화공존(不武)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과도하게 의식, 한-대만 관계 위축돼선 안돼
“행운을 빈다!” 지난 5월 백악관 한미정상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만관련 질문을 받자 바이든이 한 말이다. 한국의 난처한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든의 말은 지혜롭게 대응하란 주문이다. 대만문제에서 최적의 전략을 구하기란 그 누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양안 갈등에 관여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동참을 요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략적 선택의 선행 과제는 무력충돌 가능성과 양안관계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다.

첫째, 대만해협의 전쟁 가능성과 우리의 개입 능력을 절대 과장해선 안 된다. 한국전쟁 이후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상황은 민감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대만해협의 무력충돌이 우리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반드시 대만해협과 한반도 평화의 유불리를 전략적 선택의 최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한 몸이다. 미국이 대만을 두둔하면 중국은 북한을 감싼다.

둘째, 양안관계의 특성과 현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양안관계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복잡미묘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정 시기 어느 하나의 현상에만 주목해 단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한편 대만문제의 대응과정에서 한-대만 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1992년 이전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한 관계발전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 대만이 한국의 5~6위 교역대상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거대한 한중 관계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해 우리 스스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최근 많은 국가가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국익 관점에서 소홀했던 부분을 다시 살펴볼 뿐이다. 우리도 대만관계에 불필요한 제약이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는 불합리한 관행의 시정, 보편적 권한의 회복이라는 실무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