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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것질 끊고 달걀 50판 기부…양계협회도 놀란 아홉살 '초딩'의 약속

중앙일보

입력

게임기 대신 달걀 나눔을 한 육지승군. 사진 칠곡군

게임기 대신 달걀 나눔을 한 육지승군. 사진 칠곡군

PC방 가기와 군것질을 끊고 달걀 기부 약속을 지킨 기특한 9살 초등학생이 있다. 주인공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사는 육지승(왜관초 3년)군이다.

육군은 지난 8일 칠곡군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 뇌병변을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인 칠곡군청 이경국(33) 주무관 이름으로 달걀 50판을 기부했다. 기부 달걀은 육군이 용돈을 모은 돈으로 샀다.

9살 초등학생이 왜 용돈을 모아 달걀을 기부할까. 기부자는 왜 칠곡군청 공무원 이름으로 전달한 걸까.

사연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은 당시 100원·500원·1000원씩 수년간 모은 저금통을 헐어 어려운 이웃에게 '달걀 나눔'을 했다. 이 돈은 50만원 상당의 디지털 게임기를 사기 위해 모은 것이었다.

육군은 게임기를 사기 직전 아버지를 통해 홀몸 어르신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힘들어하는 이웃의 이야기를 접했다. 고민에 빠진 육군은 "게임기 대신 달걀을 사서 이웃에게 전하고 싶다"며 저금통을 헐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달걀을 선택한 이유로는 "영양가가 높아 이웃의 건강을 지켜줄 것 같다"면서다.

초등학생의 달걀 나눔 이야기는 동네 주민 입을 통해 경북 칠곡군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지체 장애가 있지만, 평소에도 이웃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칠곡군청 이경국 주무관이 "초등학생의 결단에 감동했다. 그 게임기를 대신 구매해 선물하겠다"고 나섰다.

서울 대한양계협회에서도 육군에게 상장과 용돈을 주고, 초등학생의 달걀 나눔에 동참했다. "나눔의 나비효과"라며 칠곡군도 달걀 나눔 확산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어른들의 칭찬과 게임기까지 선물 받은 육군은 이 주무관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게임기 금액만큼을 다시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달걀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달걀 기부 약속을 지킨 육지승군과 이경국 주무관이 새끼 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칠곡군

달걀 기부 약속을 지킨 육지승군과 이경국 주무관이 새끼 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칠곡군

육군은 기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저축을 했다. 평소 치킨·아이스크림 등 군것질을 위해 자주 찾던 편의점도 발길을 끊었다. 용돈을 쓰게 만드는 문구점과 좋아하던 온라인 게임을 위해 친구들과 즐겨 찾던 PC방도 멀리했다. 추석 때는 할머니 댁과 자주 찾지 않던 친척 집을 돌면서 용돈을 받아 한푼 두푼 저축해 나갔다.

육군의 가족도 용돈을 일주일 5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려주고, 편의점에서 육군이 즐겨 먹던 음식을 집에서 대신 만들어 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40여만원을 모은 육군은 다시 이 주무관을 찾아가 달걀 기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고, 칠곡군장애인복지관에 달걀이 전해지게 됐다.

이 주무관은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지승이가 정말로 약속을 지킬 줄 몰랐다"며 "지승이를 통해 독거 취약계층 지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지승이의 선행을 통해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나눔이라는 선한 영향력이 더욱 퍼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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