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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보호와 금융선진국 사이…이재명의 ‘공매도’ 절충안 고심

중앙일보

입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일 “공매도,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며 “큰손과 개미(개인 투자자)에게 공정한 룰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매도가 갖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1.8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1.8 국회사진기자단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여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주가가 실제 하락하면 다시 싼 가격으로 사들여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로 기관ㆍ외국인 등이 이용한다. 국내 개인 투자자 상당수는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주가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대형 기관투자자가 의도적으로 시세를 조작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후보는 그간 공매도와 관련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적발시스템 구축 등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꾸준히 이어졌다”면서도 “개인 투자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그러한 이유로 “지난해에 비해 올해 개인투자자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은 증가했지만, 총매도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하락”한 점, “공매도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점, “공매도를 위한 대주ㆍ대차 담보 비율은 외국인이나 기관 같은 큰손은 105%, 개인은 140% 그대로”라는 점을 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특히 이 후보는 보완 방향으로 “개인투자자를 위한 대여 물량을 확대하고, 대주 담보비율을 조정해 개인투자자가 공정한 공매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불법 공매도 등 관련 법령 위반 시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지난해엔 “금지 연장” 주장…이번엔 수정ㆍ보완

표면상 공매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했지만, 지난해 8월 이 후보의 입장보다는 다소 순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는 지난해 8월 민주당이 한시적으로 정한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 시한이 다가오자, 페이스북에 “공매도 금지를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추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공매도 거래 비중의 단 1%대에 불과한 개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접근이 어렵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머니게임 전유물이 된 지 오래”라는 이유에서다.

이 후보는 또 당시 불법 공매도 세력에 대해서는 “‘20년 징역형’이나 부당이득보다 몇 배 이상 많은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실제 당시 공매도 금지 조치는 올해 5월까지 연장됐다. 당시 증권가에서 이 후보에 대해 “개인투자자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이다.

침묵 후 보완 주장 왜…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고려

이 후보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엔 공매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특히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발전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선 공매도 관련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피하기도했다. 최근 국내 주가 하락으로 이른바 ‘개미 투자자’들이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에 ‘공매도 폐지 청원’을 올리는 등 불만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 후보의 신중한 행보에 대해 “다른 사안에 비해 이례적이다”라는 평가도 나왔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일각에선 이 후보가 침묵한 이유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MSCI 선진국 지수 편입과 관련 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MSCI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셜널사가 작성해 발표하는 지수로, 세계 각국을 선진(DM)ㆍ신흥(EM)ㆍ프런티어시장(FM)으로 분류한다. 한국 증시는 1992년 MSCI 신흥국 지수에 편입된 뒤 2008년부터 매년 선진시장 승격에 실패했고, 한국경제연구원은 선진국 지수에 편입될 경우 18조~61조원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공매도 제한은 선진국 지수 편입의 장애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MSCI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지난해 3월 공매도를 금지했고 올해 5월 부분적으로 해제됐지만, 단기적으로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지적했다. “7년째 제자리인 국내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해내겠다”고 밝힌 이 후보 입장에서 공매도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결국 이 후보의 이날 발언은 결국 개미가 원하는 공매도 폐지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공매도 재개 사이에서 절충안을 수립했다는 게 여권 내 대체적인 해석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인 이 후보 측 김병욱 의원은 “이 후보는 공매도 제도가 여러 차례 개선이 됐음에도 여전히 개미에게 불리하다는 생각이 있다”면서도 “후보가 최근 MSCI를 언급했듯, 국제적 정합성에 맞게 공매도 자체는 폐지가 아니라 보완ㆍ유지를 해야 할 제도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은 대여물량 확대를 요구하지만, 실시간 공매도 공지 등 시스템 개선도 병행되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후보의 정책이 보다 구체화할 필요는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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