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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개그·동문서답에 멍든 공동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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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단군 이래 최대 ‘공익창출’과 ‘특혜 비리’가 대결 중인 ‘대장동 의혹’으로 이미 쓰라린 국민의 상처에 허무개그가 소금을 뿌리고 있다. 주역의 한 명인 변호사는 출퇴근 검찰 조사를 받던 지난달 21일 기자에게 “나중에 커피 한잔 사겠다” “(집에 갈 때) 같이 가자”며 죄의식이 마비된 단군 이래 최대의 희롱성 허무개그를 대놓고 했다. 허탈한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풍자하는 “화천대유 하세요” “천화동인 하세요”라는 신조어마저 만들며 거대한 부정을 전복하고 싶어 했다.

또 다른 주역인 전직 법조 출입 기자는 “잘못은 없고 정상적인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기자는 대장동 사업 허가권자였던 성남시장을 지낸 현 여당 대선 후보자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을 전후해 대법원을 8차례 방문했다. 그가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대법원 판사는 무죄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퇴직 후 화천대유에서 한 달에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왜 그리 자주 방문했느냐는 물음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고 했다. 그곳의 이발 수준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실소와 분노를 자아내는 안하무인의 허무개그가 아닐 수 없다.

대장동 의혹 주역들의 안하무인
철거·실향민 터전이었던 성남시
누가 이곳의 아픔을 조롱하는가

대장동이 있는 성남시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주거지의 파괴, 피난민·월남인과 1960년대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수많은 사람이 서울권으로 몰리면서 형성된 무허가 도시빈민판자촌이 옮겨간 곳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판자촌은 상·하수도와 오물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보건위생이 매우 취약하고, 무질서한 밀집으로 화재가 발생해도 진화가 어렵고 범죄 발생률이 높은(국가기록원) 참담한 환경이었다. 1970년 서울 창신동 판자촌에서 난 화재로 129가구, 240평이 잿더미가 됐고, 이재민 1381명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 한 지식인의 한탄이다.

“240평의 땅에 129채의 집이 있었다면 한 채의 집이 점했던 대지는 1.9평의 공간 위에 서 있었던 셈 (…) 1 29채의 ‘주택’에서 화마에 쫓겨난 이재민은 모두 347세대(이니) 한 집에서 세 세대가 살고 있었다 (…) 이재민의 수가 1381명(이니) 240평의 대지 위에 한 사람 당 평균 쳐서 0.17평 (…) 130채의 집이 싹 다 타버리는 데 1시간 30분(이니) 집 한 채가 타는데 꼭 1분, 그 집들이 어떤 건축재로 지어졌던 것일까 (…) 경찰은 화재 피해액을 300만원으로 추계하고 (있으니) 1381명이 지녔던 물질적 재화는 평균 2143원꼴이다.” (『우상과 이성』, 이영희)

청계천 복개와 세운상가 아파트 건축으로 2만3692세대, 11만4455명의 힘없는 판자촌 약자들이 정부의 철거정책에 의해 이주한 곳이 경기도 광주(현재 성남시)였다. 1971년 8월 10일 그곳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이라는 해방 이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빈민투쟁이 일어난다.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6시간 동안 광주대단지 전역을 장악한 사건이었다. 서울시장이 요구를 무조건 수락한다는 약속으로 수습됐지만,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부상하고 23명이 구속됐다(『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회). 공권력의 서슬이 퍼렇든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비극을 간직한 땅에 천문학적인 돈벼락을 안겨준 ‘특혜’가 발생한 것이다. 2015년 7월부터 시작된 사업에서 사업자들은 약 1조6000억원의 부당이익(경실련 추정)을 챙겼다. 화천대유자산관리와 천하동인 1~7호 사주 등 7명은 3억5000만원을 출자해 8500억원이라는 초현실적인 수익을 얻었다. 당연히 제기되는 사업 선정과 설계과정에서 성남시가 한 역할의 불법성에 대한 국민의 의문에 대해 집권여당은 ‘유례없는 공익창출’이라는 동문서답으로 (70%를 상회하는 특검 찬성 국민에 대한) 공감능력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일에야 겨우 구속된 주역은 성남시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성역 없는 수사로 의혹에 대한 해소는 물론이고 공동체를 조롱하는 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살던 곳을 강제수용 당한 대장동 주민들은 50년 전의 약자, 철거민의 신세로 돌아갔다. ‘사람이 먼저’라는 정권의 슬로건이 답답하고 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