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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초등한 히말라야 봉우리…정상 오른 7명 중 1등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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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09면

히말라야 ‘마리앙피크’ 세계 첫 등정 

서부 네팔의 히말라야 마리앙피크(6528m)는 지난달 9일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가 세계 최초로 올랐다. 사진은 마리앙피크 캠프1에 물자를 나르는 원정대.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서부 네팔의 히말라야 마리앙피크(6528m)는 지난달 9일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가 세계 최초로 올랐다. 사진은 마리앙피크 캠프1에 물자를 나르는 원정대.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히말라야의 7인. 그들은 125㎞를 걷고, 모두 6528m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125㎞를 걸었다.

대한산악구조협회(이하 산악구조협회) 등반 원정대 7명 전원이 지난달 9일과 10일 아무도 오르지 않은 히말라야의 봉우리에 올랐다. 마리앙피크(Mariyang Peak)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탓에 히말라야로 향하려던 각국 발길이 오랫동안 묶인 뒤의 소식이다. 간만에 등반대가 찾아오자 일거리가 없어 곤궁했던 셰르파와 쿡, 포터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 네팔 관광부 장관, 네팔산악협회장 등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기도 했다.

미등정 6528m 봉우리…24일간 250㎞ 걸어

15일간 125㎞에 걸친 마리앙피크로의 상행 카라반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원정대.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15일간 125㎞에 걸친 마리앙피크로의 상행 카라반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원정대.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차라리 에베레스트(8848m)와 안나푸르나(8091m)로 가는 길이 고속도로처럼 뻗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구은수(51·서울산악구조협회) 원정대장은 마리앙피크의 밑동까지 가는 카라반(caravan·본격 등반 전까지의 이동) 자체가 험난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원정대는 9월 13일, 카트만두에서 서쪽 세이폭순도(SheyPhoksundo)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귀청 때리는 프로펠러기를 탔다. 주팔(Juphal)에서 히말라야 깊은 곳으로 몸을 넣었다.

20개월. 한라산·설악산·북한산·대둔산·발왕산·천둥산의 계곡과 능선, 바위와 눈에서 훈련을 견뎠다. 코로나19로 네팔에서 방역이라는 차단막을 치면서 훈련은 길어졌다. 길고 긴, 쓰디쓴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은 약이 됐다. 지극한 계절은, 지독한 히말라야의 날씨를 견딜 수 있게 해줬다. 방역 지침에 따라 훈련 인원을 나눴고, 화상 시뮬레이션도 곁들였다. 마스크를 코와 입에 꽁꽁 밀착한 채 거친 숨을 토해내며 누적 해발 3만m 넘는 산에 오른 걸,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리앙피크 세계 초등을 위해 그 50배 가까운 높이를 오른 셈. 돌이켜보건대, 산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고산 등반에 도움을 줬을까.

9월 15일. 카라반 3일째부터는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낙달로 라(5350m), 얌부르 라(4813m), 마걍젠 라(5563m), 리지 패스(5450m) 등 4000m, 5000m 라(la)와 패스(pass·이상 고개)를 수십 개 넘어야 했다. 흙먼지, 폭우, 강풍. 다시 흙먼지, 폭우, 강풍. 15일간의 카라반은 이렇게 반복됐다.

지난달 10일 여명 속 마리앙피크 정상으로 향하는 대원.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지난달 10일 여명 속 마리앙피크 정상으로 향하는 대원.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팬데믹은 네팔 경제를 폭풍 속으로 내몰았다. 2019~2020년 회계 연도의 성장률은 -1.99%. 역성장은 40년 만에 처음이다. 더더욱 타격을 받은 건 셰르파·포터·쿡 등으로 일하는 지역주민이다. 네팔은 지난해 3월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금지했다가 같은 해 9월 등반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네팔 등반팀에 허가를 내준 것이라, 외국 원정대에게는 사실상 1년간 등반 금지를 유지해 왔다.

네팔 관광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초 기준 네팔에는 1만 6248명의 트래킹 가이드와 4126명의 여행 가이드들이 있다. 네팔의 관광 수입은 국내총생산(GDP)의 8% 수준. 에베레스트만 따지면 정상 등반을 위해 입국하는 이들에게 한해 400만 달러(약 47억원)를 받고 있다. 네팔의 국내총생산(GDP)이 337억 달러(약 40조원, 2020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막대한 수입원인 셈이다.

마리앙피크 전경.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마리앙피크 전경.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한국에서도 지난 2년간 히말라야 원정이 드물었다. 노익상(73·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원정대 단장은 “올해 10월까지 산악구조협회의 마리앙피크 원정과 충북산악연맹(조철희 원정대장)의 다울라기리(8167m) 원정만 진행됐는데, 대한산악연맹에서 추진한 원정대 중 마리앙피크처럼 큰 규모는 사실상 2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산악구조협회는 이번 원정에 8만 달러(약 9400만원)를 들였다. 도움을 줄 주민을 고용하고, 야크를 빌리는 등 항공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네팔 현지에서 쓴 비용이다. 노 단장은 “주민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카라반 중에는 마을 주민에게 학용품을 전달했다. 임정희(46·경기도) 대원은 “사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학용품이지만, 값진 미소로 답해준 주민들이 잊히지 않는다”며 임 대원 역시 그들과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봉(6528m)을 초등했다. 사진은 마리앙봉까지 125km 캐러번 중현지 주민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하는 장면. 사진=대한산악구조협회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봉(6528m)을 초등했다. 사진은 마리앙봉까지 125km 캐러번 중현지 주민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하는 장면. 사진=대한산악구조협회

9월 25일 카라반 13일째. 초원에 서니 마리앙피크가 보였다. 흑과 백의 거대한 봉우리가 곧추서 있었다.

20개월간 누적 고도 3만m 강훈련
“뭐야 여긴.”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봉(6528m)을 초등했다. 사진은 마리앙봉 베이스캠프. 사진=대한산악구조협회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봉(6528m)을 초등했다. 사진은 마리앙봉 베이스캠프. 사진=대한산악구조협회

9월 27일 15일 만에 카라반을 마쳤다. 이명희(53·경북)와 정재균(48·전북)이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해발 5150m의 베이스캠프(BC)는 삭막했다. 아니, 따로 BC라고 정해진 곳도 없었다. 반듯하기만 하면 됐다. 그게 돌무더기 위였다. 각국 등반대가 임시 클럽이 된 대형 천막 안에서 파티를 벌이던 에베레스트 BC가 아님을 절실히 느꼈다.

히말라야 초등은,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그 맨땅은 철근 같고, 헤딩은 대포처럼 강력하다. 정보가 없다.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셰르파들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셰르파 왕추는 거침이 없었다. 8일간 구은수 대장과 함께 5800m에 전진캠프를 구축했다. 150m 설벽과 200m 암벽에 자일(seil·로프)을 고정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날씨가 잠잠해질 때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10월 8일 오전 4시. 정재균·백종민(48·강원)·정재진(47·경북) 대원이 마리앙의 날카로운 능선에 올랐다. 이날을 위해 그토록 많은 새벽을 산에서 맞이했던가. 안 보이니 발밑 허공의 아득함도 희박해진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튿날인 9일 오전. 매서운 바람. 가까워졌구나, 정상이. 그러나 반전. “어? 여기가 아닌가 봐.” 코미디 대사쯤 될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오전 9시 42분. 이번엔 제대로 정상을 찾았다.

10일 오전 9시 10분 이명희·임정희·엄태철(45·대구) 대원도 구은수 대장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대장과 대원 전원이 마리앙피크에 오른, 드문 기록이다.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피크(6528m)을 초등했다. 마리앙봉 정상에 선 정재진(왼쪽)·정재균 대원.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대한산악구조협회가 지난 10월 9일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인 마리앙피크(6528m)을 초등했다. 마리앙봉 정상에 선 정재진(왼쪽)·정재균 대원.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정상이라고 끝난 게 아니다. 구은수 대장이 외쳤다. “자, 다시 카라반!” 9일간의 하행 카라반. 이번엔 폭우, 폭우, 폭우.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대원들은 “지옥 같은 카라반”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빗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고, 쪼그려 앉아 과자 부스러기도 나눠 먹으며 그들은 지옥 탈출을 함께 했다.

모든 산행은 집 문을 나와 집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갈 때 끝난다. 엄마, 아빠, 아들, 딸, 남편, 아내…. 대원들은 모두 ‘누군가의 누구’다. 그 ‘누구’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문득 궁금하다. 세계 초등인데, 처음으로 발을 마리앙피크 정상에 찍은 대원은 누구였을까. 구은수 대장은 “노 코멘트”라며 웃었다.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가 마리앙피크까지 125km 상행 카라반 중 비를 피하고 있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가 마리앙피크까지 125km 상행 카라반 중 비를 피하고 있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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