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강약 조절을 포용정책은 이념 편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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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고건(사진) 전 국무총리가 8일 대북 '햇볕정책 조절론'을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이념편향을 질타했다. 안동대에서 열린 '21세기 한국의 선택-위기를 넘어 미래로'라는 강연에서 고 전 총리는 "햇볕이 계절마다 강약 차이를 보이지만 겨울에도 사라지지 않듯이 햇볕정책도 상황에 따라 강온을 잘 조절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기존의 햇볕정책에 이념편향을 강하게 가한 경직된 대북 유화정책으로 추진됐다"고 비판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견제구를 날린 반면 노 대통령과는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주변에선 "고 전 총리가 반격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한 측근은 "고 전 총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설문을 직접 썼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며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 전 총리가)DJ의 아류로 인식된다면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세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고 전 총리가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 데는 노 대통령과 DJ의 4일 사저(私邸) 회동이 분수령이 됐다는 전언이다. 임기 말 권력누수를 우려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햇볕정책 지키기에 나선 DJ가 밀월관계에 들어갈 경우 자신의 역할공간이 축소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자칫 열린우리당.민주당을 아우르는 고건발 신당 창당 구상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 하지만 그가 DJ와의 거리두기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이날도 그는 DJ의 최근 행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나라가 어려울 때 전직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본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 "가을햇볕 전략으로 변모해야"=다음은 강연요지다(괄호 안은 원고에는 있지만 실제로 낭독하지 않은 부분). "북핵 사태는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다. 핵 보유국과 비핵 국가 사이 군사적 균형은 애당초 논할 수 없다. 안보 과민증도 문제지만 '설마 핵으로 우리를 공격하랴' '통일되면 북핵도 우리 것'이란 식의 안보 불감증도 문제다. 북한은 동포이자 한국전.연평해전 등을 도발한 군사적 적이기도 하다. 어느 한쪽을 강조하는 건 위험천만하다. (노 대통령은 핵실험 전에 '북핵이 일리 있다'고 하는 등 유화정책을 밀어붙이다 실험 직후엔 유화정책을 포기한다고 했다가 하룻밤 새 다시 유화책으로 돌아갔다. 요즘엔 아예 '북이 핵실험을 했어도 한반도의 군사균형은 깨지지 않았다'고 하는 등 안이하고 경직된 유화고수론을 펴고 있다.)

햇볕정책은 성과가 있는 정책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엄동설한에도 햇볕은 빛난다. 지금은 싸늘한 가을철이다. 지속적 동포애와 추상 같은 제재를 합리적으로 배합한 '가을햇볕 전략'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단 전시작전통제권 등 안보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북핵이 미국 압박에 대한 자위적 수단이라거나 협상용이란 건 근본적으로 그릇된 인식이다. 인접 강대국들과 무분별한 감정충돌을 일삼거나 반미의식에서 인접 강대국과 동맹한다면 이는 독립과 선린, 평화와 번영을 다 잃는 길이다.)

안동=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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