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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패배한 '론스타 배임' 변양호 무죄…이재명 구원투수 등판?

중앙일보

입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서울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주식시장 발전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서울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주식시장 발전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가 확정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판례 등에 대한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정책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확정된 ‘변양호 판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배임 혐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론스타 사건은 당시 윤석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가 수사와 기소에 참여했다가 무죄가 났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대장동 사건은 변양호 사건과 판박이?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의혹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변 전 국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사건 판례 등을 포함해 법원의 배임 판례들에 대한 전반적인 법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변 전 국장은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공모해 외환은행의 부실을 부풀려 정상가보다 3443억~8252억원 낮은 가격에 매각되도록 한 혐의로 2006년 재판에 넘겨져 2010년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사후 책임 추궁이 뒤따를 수 있는 정책 판단을 피하고자 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일명 론스타 사건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직접 수사를 맡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참여했다. 윤 전 총장은 2006년 대검 중수부 연구관(부부장검사)로 이 사건 기소 검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법조계는 이 사건을 기업의 경영상 판단이 아닌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배임 혐의를 적용해 법원의 판단을 받은 대표적인 판례로 꼽는다. 이 사건의 배경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성남시)로, 등장인물을 변 전 국장에서 이 후보로 바꾸면 대장동 배임 의혹과 표면적으로 그 구조가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수사팀은 변 전 국장이 외환은행 매각의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론스타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해 수천억원대 손해를 봤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당시 이강원 외환은행장과 함께 재판에 넘겼다.

성남시장으로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이 후보가 민간사업자에게 이익을 몰아주도록 설계된 공모지침서·사업협약서를 결재했고, 이를 통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최소 651억원(검찰 추산)에서 1793억원(성남도공 추산)의 손해를 본 것이라면 역시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성남도공 정관은 공사의 재산 처분 사항이나 분양 가격 결정을 성남시장에게 사전 보고하게 돼 있다.

2002년 7월 22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재경부에서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이 침체된 주식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주식수요기반 확충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경부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던 자리를 3년 동안 맡았다.[중앙포토]

2002년 7월 22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재경부에서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이 침체된 주식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주식수요기반 확충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경부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던 자리를 3년 동안 맡았다.[중앙포토]

"론스타 판례로 이재명 무혐의 처분할 가능성" 

하지만 변 전 국장이 1심, 2심은 물론 상고심에서까지 모두 무죄를 받았다는 판례에서 검찰이 이 후보를 무혐의 처분할 명분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해당 판례에 따라 검찰이 기소해도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무혐의 처분을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대법원은 변 전 국장 판결문에서 “공무원이 그 당시의 경제적 상황과 여건, 매각의 필요성, 매각 가격의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임받은 사무와 직무의 본지(本旨)에 적합하다는 판단으로 이를 처리한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정책 판단과 선택의 문제”라며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등에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적 이익이 귀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만으로 임무위배가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후보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실제로 대장동 수사팀은 “고정이익 확보란 정책적 판단을 한 이 후보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판례의 경우도 회사 경영진의 경영상 판단이나 공직자의 정책적 판단에 있어 사익 추구가 개입되지 않으면 배임죄 인정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은 유 전 본부장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하면서도 공소장에 이 후보의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성남시의 역할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장동, 변양호와 달라…화천대유 선정할 특별한 사정 없어" 

다른 한편에선 변 전 국장의 판례를 이 후보 배임 의혹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변양호 사건의 경우 외환은행을 그렇게라도 매각하지 않았을 경우 금융 시스템 붕괴 등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며 “하지만 대장동 사건의 경우 성남도공이 민간사업자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컨소시엄이 아닌 화천대유를 선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등 말도 안 되는 사업협약서 등을 결재한 이 후보의 배임 혐의는 명백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석동현 전 검사장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사건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결정권자들이 개인적 사익 추구를 하지 않았더라도 부당한 목적을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업무처리를 했다면 배임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며 “검찰에서 벌써 이 후보에 대한 수사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성급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4일 검찰에 구속됐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4일 검찰에 구속됐다. 연합뉴스

'윗선' 수사 나서나…중앙지검 "배임 법리 검토 충분히 진행"

검찰은 4일 새벽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를 구속하면서 향후 배임의 ‘윗선’ 의혹 규명에 나설 전망이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팀이 어떤 판례를 검토했다고 확인해주기 어렵다”면서 “배임 법리 검토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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