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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위험이었다" 1조 백신도박 베팅한 40세男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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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계산된 위험이었다.”
세계 최대 백신 제조업체 인도혈청연구소(SII)의 아다르 푸나왈라(40) CEO는 2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지도 않았을 때 백신 수백만 도즈를 생산하도록 수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솔직히 말해서 그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것 같았다”고 했다.

백신 개발 불투명한데 10억 달러 투자

지난 1월 22일 인도 푸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다르 푸나왈라 SII CEO. AFP=연합뉴스

지난 1월 22일 인도 푸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다르 푸나왈라 SII CEO. AFP=연합뉴스

푸나왈라는 옥스포드 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AZ)가 공동 개발 중이던 백신 생산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1800만원) 투자를 유치했다. 원재료 구입비와 설비 확충에 들인 8억 달러 중 2억5000만 달러는 SII 자체 자금이었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3억 달러를 보탰다. 개발도상국에 무료로나 저렴하게 백신을 공급하는 조건이었다. 나머지 금액은 SII와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한 국가들이 부담했다. SII는 게이츠 재단과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의 합의에 따라 92개국에 최대 2억 도즈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은 AZ 백신이 임상 시험 단계에 있을 때 진행됐다. 백신 개발이 얼마나 걸릴지 혹은 성공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을 때다. 푸나왈라는 “백신 개발에 실패했다면 (수억 달러 상당의 원료와 설비는) 한꺼번에 처리해서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1조원 짜리 도박에 뛰어든 셈이다. 그는 “SII는 다른 회사와는 달리 가족 사업체이기 때문에 과감하고도 신속한 결정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SII의 백신 생산량은 연간 15억개에 달한다. 단일 제조업체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해 홍역, 풍진, 파상풍, 백일해, 간염, BCG 등 전 세계 어린이의 절반 이상은 SII의 백신을 최소 한 번은 접종했을 것으로 SII는 추정한다. SII는 푸나왈라의 아버지 사이루스 푸나왈라(80)가 설립한 사이루스 푸나왈라 그룹의 자회사로 1966년 설립됐다. 말을 사육하던 푸나왈라 가족은 지난 55년간 제약과 금융, 부동산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사이루스의 자산 규모는 약 160억 달러로 블룸버그 기준 인도 7번째 부자다. 그의 아들 아다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2001년 SII에 합류, 2011년 CEO로 취임했다.

“백신으로 자기 배 불리기” 비판도

아다르 푸나왈라. AP=연합뉴스

아다르 푸나왈라.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AZ 백신 접종이 승인되자 푸나왈라는 인도에서 백신 영웅이 됐고,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100년 만에 한 번 오는 팬데믹을 백신 수백만 도즈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그의 계산은 착오였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올해 초 인도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다. SII는 인도 정부가 AZ 백신 긴급 사용 승인 당시 내건 ‘인도 취약층 접종분을 우선 확보하지 못하면 당분간 백신을 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따라 지난 1월 수출 중단을 선언했고, ‘백신 이기주의’ 비판에 휩싸였다.

특히 푸나왈라가 약속했던 개발도상국 백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SII가 유치한 투자금을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은 채 자기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 보건분야 감시단체인 의약품 행동 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 말리니 아이솔라는 CNN에 “아스트라제네카 사는 개도국으로부터는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SII에 적용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SII는 개도국에 백신 10억 도즈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급 물량은 4억 도즈에 그쳤다.

1966년 백신업체인 인도혈청연구소(SII)를 창업한 사이더스 푸나왈라 회장(오른쪽)이 2019년 11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로부터 인도의학연구위원회의 공로상을 받고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에게 백신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 SII 홈페이지

1966년 백신업체인 인도혈청연구소(SII)를 창업한 사이더스 푸나왈라 회장(오른쪽)이 2019년 11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로부터 인도의학연구위원회의 공로상을 받고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에게 백신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 SII 홈페이지

이에 대해 푸나왈라는 “(백신 공급)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백신으로 이윤을 남기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세상을 보는 매우 불합리하고 순진한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SII는 AZ 백신 공급으로 얼마나 벌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10억 도즈 접종을 달성하면서 백신 수출을 재개하기로 했다. SI는 지난 9월 백신 생산량을 한 달에 1억 6000만 도즈로 늘리고 백신 제조를 위해 미국 바이오테크 업체 노바벡스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CNN은 “푸나왈라와 SII가 세계의 백신 불평등을 끝낼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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