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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석자만 쏙 뺀 공소장…“배임 면책? 法 판단 받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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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유동규(52)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배당이익 651억5000만원과 5개 블록의 아파트 시행이익을 공사가 출자비율에 따라 배당받지 못하게 한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하면서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범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의 17쪽 분량 공소장엔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인허가 및 최종 결재권자로서 이재명 후보의 이름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남시의 역할에 대한 설명도 통째로 빠져 있다. 10여년 전부터 ‘판교, 분당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에 수천억대 개발이익을 노린 화천대유 주주들이 유 전 본부장과 공모한 범죄로만 본 것이다.

다만 검찰은 이 후보자 배임 제외 논란과 관련 2일 “수사팀은 현재까지 어떤 결론을 내린 바 없고 앞으로도 엄정하게 수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대선 선대위 출범식 2일 올림픽경기장 KSPO돔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이 열린 가운데 이재명 후보가 연설을 하기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대선 선대위 출범식 2일 올림픽경기장 KSPO돔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이 열린 가운데 이재명 후보가 연설을 하기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檢 “대법원 판례 따라 이재명 ‘정책판단’ 배임죄 어려워”

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1일 유 전 본부장을 추가 기소하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6)씨,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48) 변호사, 정민용(47) 전 성남도공 투자사업팀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배임의 공범에서 사업 최종 결정권자인 이재명 당시 시장을 제외했다.

대신 공소장 결론에서 “유 전 본부장은 정민용, 김만배, 남욱, 정영학과 공모해 화천대유, 천화동인 1~7호에 배당이익 651억5000만원 및 대장동 5개 블록 시행이익에 따른 액수 불상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피해자 공사에 동액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범행 동기를 “추후 개발이익이 발생해 배당이 이뤄지는 시점에 대가로 거액을 요구해 받기로 마음 먹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성남시 분당구 노래방에서 김만배씨에 “대가를 지급하라”고 요구해 700억원을 받기로 약속받았고, 올해 1월 김씨 수원시 주거지 앞에서 약속한 700억원 중 5억원을 받은 혐의(부정처사후수뢰)를 추가로 기소했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대목에 대한 일반적 설명조차 공소장에 나오지 않는다. 유 전 본부장의 구체적 임무위배(배임) 행위가 2015년 초 김씨에게 “우리(공사)는 임대주택 필지(A11 블록) 하나만 주면 되고, 나머지 블록은 알아서 가져가라”고 말한 것으로 시작한 것으로 기술하면서 당시 유 전 본부장에 ‘임대주택 필지 하나를 고정이익으로 환수하라’는 지시를 한 윗선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수사팀은 이를 두고 “고정이익 확보란 정책적 판단을 한 이 후보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판례의 경우도 회사 경영진의 경영상 판단이나 공직자의 정책적 판단에 있어 사익 추구가 개입되지 않으면 배임죄 인정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익을 추구하려는 목적 없이 성남도공에 고정이익 확보를 요구한 이 후보자의 정책적 판단에 대해 미국법의 ‘경영판단 원칙’에 따라 배임죄 적용이 어렵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인 셈이다. 형법 배임죄(제355조 제2항)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제3자에게 이익을 돌아가도록 해 회사 등에 손해를 끼칠 경우 성립한다. 배임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최종 윗선이 누구인지 가리는 핵심적 혐의다.

검찰이 1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검찰이 1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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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판단 배임죄 적용 여부, 法 판단 필요”

검찰의 해석대로 대법원에선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해 배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대한보증보험이 한보그룹에 특혜성 보증을 선 사건이다. 대법원은 경영판단 원칙의 법리를 적용해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의사를 결정했다면 회사에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리스크(위험)가 발생할 수 있는 결정을 할 때가 있고 예상과 달리 손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책임까지 묻는다면 정책적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등 사회적 손실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법조계에선 ‘공공기관의 정책적 판단’이 경영판단 원칙에 해당하는지 보려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원 출신 변호사는 “배임죄에 대한 처벌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 제동장치로 도입된 게 경영판단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에선 형법 조문이 아닌 하나의 판례에 불과해 인정 요건이 엄격하다”며 “특히 정책판단이 경영판단 원칙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나온 판례가 없어 다퉈봐야 할 지점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판사는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회사의 명성, 고용된 직원들의 사기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회사가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대장동 의혹 사건은 결이 달라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더 살펴볼 지점들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 “李 ‘경영판단 원칙’ 속하지 않는다”

학계에서도 이 후보자에게 배임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검찰이 말하는 정책적 판단으로 인정받으려면 그간 경영판단에 관한 대법원 판례나 경영판단에 관해 선도적으로 이론을 정립해 온 미국의 판례 취지를 살펴야 한다”며 이 원칙이 성립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경영판단 원칙이 성립하려면 당사자가 판단 대상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고(①) 그 상황에서 적절하고 합리적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정보를 확보(②)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린 경영자의 판단이 조직에 최상의 이익이 되는 것이라 믿어야 한다(③)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장동이 본인의 정치적 선전물이었기 때문에 명백히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①) 직접 대장동 개발 전에 수천억의 수익이 가능하다고 공언함과 동시에 기사 등 판교 노른자 땅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이를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을 뿐더러 (②)초과이익 환수 장치를 두어야 한다는 실무자들이 보는 실무자들의 이익을 명백히 본인 스스로 거부했다③”면서다.

이를 두고 검찰은 2일 “수사팀은 현재까지 어떤 결론을 내린 바 없다”며 “결론을 예단하지 않고 증거관계를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사가 파악한 배임 발생 과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사가 파악한 배임 발생 과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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