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view] “더러운 중국산” 바이든이 거칠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 에서 ‘공급망 회복력 관련 정상회의’ 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 회의는 공급망 차질에 따른 물류대란 해소를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 에서 ‘공급망 회복력 관련 정상회의’ 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 회의는 공급망 차질에 따른 물류대란 해소를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 [사진 청와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전 세계 제조·물류의 공급 사슬에서 중국의 힘을 빼고 미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의존도가 높아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은 또다시 시험대에 서게 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주요 패권국가의 ‘공급망 국수주의’가 심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일본·영국 등 14개국 정상을 따로 만나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논의했다. 모두 미국의 동맹·우방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든 발언은 중국을 겨냥했다. 그는 “공급망의 다양화는 단일 공급망의 집중적인 통제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취약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것”이라며 “우리는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단일망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를 의식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G20 화상회의에서 “인위적으로 소그룹을 만들거나 이념으로 선을 긋는 것은 간격을 만들고 장애를 늘릴 뿐이며 과학기술 혁신에 백해무익하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관련기사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개회사에 이어 가장 먼저 발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물류 차질이 한층 심각해지면서 세계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글로벌 물류대란에 공동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급망과 물류는 상호 연결과 흐름의 문제로 한 나라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라며 “우리는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를 통해 코로나19가 촉발한 수많은 문제에 해결책을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회의 직후 청와대 측은 “이번 공급망 정상회의는 시급한 ‘포스트 코로나’ 경제 회복 과정에서 발생한 공급망 불안정 상황에 대한 각국의 우려와 평가를 공유하고 각국 정부와 기업이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 정신으로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의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데 있어 국제사회 전반의 관심과 지지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바이든의 주문에 화답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한국기업들에 ‘반도체 정보 제출’ 압박 더 거세질 듯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이 지난달 31일 중국 견제를 위한 글로벌 공급망 행사를 열고 있다. 같은 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화상으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신화=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이 지난달 31일 중국 견제를 위한 글로벌 공급망 행사를 열고 있다. 같은 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화상으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신화=연합뉴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소집령’이 중국을 향한 단순한 어깃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6월 반도체와 배터리·의약품·희토류 등 4개 품목에 대해 자국 공급망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모두 중국의 입김이 센 분야다. 이준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장은 “미국은 보고서를 통해 핵심 전략 품목의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했다”며 “미국이 첨단기술과 산업 재편 행보를 장기간 추진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는 동맹·우방국을 끌어들여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달 31일 미·유럽연합(EU)의 철강 관세 분쟁 종료 선언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EU와 철강 관세 분쟁을 끝내는 내용에 합의한 뒤 중국을 겨냥해 “중국 같은 ‘더러운 철강’(dirty steel from countries like China)의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산 철강이 탄소 배출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며 ‘더러운 철강’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1일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미·EU 간 합의에 따라 EU산 철강의 대미 수출이 증가할 경우 한국 수출에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 제출’ 압박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5일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명분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45일 이내에 재고와 주문·판매 관련 장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달 8일이 마감 시한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이번 회의로) 반도체 정보 제출에 대한 압박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미 정부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한국으로선 최대 고객(중국)의 기밀 정보를 미국에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럴 경우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는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미 정부의 정보 제출 요구에)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나라의 ‘공급망 쟁탈전’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손영환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자유무역보다 경제 안보가 중시되면서 원활한 공급망에 대한 기대가 줄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공급망 차질 문제가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현실화하면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이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준 본부장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중국과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 분업 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한국은 산업별 공급망 전략을 재정립하고, 미국과 기술동맹국 등에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로서 한국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