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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직선제 도입, 북방 정책 좋은 평가 받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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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14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1989년 9월 27일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1989년 9월 27일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 중 공로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표시로 이 패를 드립니다. 한국 국민은 귀하가 양국 간 우호를 더욱 돈독히 함에 있어 소중한 기여를 한 데 대해 깊이 감사하며 오래도록 기억할 겁니다. 따뜻한 애정을 담아,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아몽크에 있는 도널드 그레그(94) 전 주한 미국대사 자택에 들어서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새겨진 감사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레그 전 대사가 이임할 때 선물한 감사패다. 감사패는 그레그 전 대사 임기 종료를 엿새 앞둔 1993년 2월 21일 증정됐다. 노 전 대통령의 5년 임기 종료를 사흘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그레그 전 대사의 3년 반 한국 근무 기간은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과 일치한다.

1927년생인 그레그 전 대사는 1932년생인 노 전 대통령과 연배도 비슷해 “친한 친구로 지냈다”고 회고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고령임에도 당시 일화들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했다. 그는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정말 유감이다. 주재국 국가 원수와 외국 대사가 돈독한 관계를 맺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노 전 대통령과는 그게 가능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 3년 반 한국서 근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회고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회고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노 전 대통령과 어떻게 친구가 됐나.
“우리는 ‘진짜 친구(real buddies)’였다. 관계가 매우 좋았다. 그는 내가 대사로 근무한 기간 내내 대통령이었다. 둘 다 테니스를 무척 좋아해 함께 치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종종 나를 청와대 코트로 초대했다. 골프도 많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울리기가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테니스나 골프가 업무에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온갖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못 나눌 얘기가 없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신뢰를 쌓았다. 농담은 물론 서로 놀릴 수도 있는 관계였다. 한번은 노 전 대통령이 골프 내기에서 져서 내게 1000원을 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김옥숙 여사와 내 아내 멕이 합류한 혼합 복식에선 우리 부부가 졌다(웃음).”

그레그 전 대사는 노 전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전 미 대통령과의 테니스 경기를 주선하기도 했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이 일본 정상과 경기할 때는 미국팀 대 일본팀 구도였는데 이때는 한·미 대통령이 한 편이 되고 참모들이 다른 팀이 돼 양국 정상이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인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는 건 매우 중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대통령 간선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무척 심하지 않았나. 대통령 직선제 도입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5·18 민주화 운동과의 연관성 때문에 평가가 박한 점도 있다.
“맞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기본적으로 노 전 대통령도 관련이 있지만, 나는 그 문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전 전 대통령이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한·미 관계가 많이 어려워져 수습하느라 힘들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은 북방 정책을 지지했는데.
“북한의 우방이었던 옛 소련, 중국과 수교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넓은 비전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도 충분히 상의했고 나도 적극 지지했다. 미국은 199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노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만남도 주선했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 대한 중국의 반대를 꺾는 데도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매우 정교한 외교”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그가 부임했을 때 한국에 대사관을 둔 동유럽 국가는 헝가리가 거의 유일했는데, 이임할 때는 북방 정책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동유럽 국가가 서울에 대표를 두게 됐다면서다.

북방 정책이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쳤나.
“노태우 정부와 신뢰가 깊었기 때문에 한국이 옛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한다고 해서 한·미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냉전 해체 후 미국이 옛 소련 등과 원활한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노태우 정부는 매우 효율적인 정부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길 원했던 만큼 나 또한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하고 싶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감사패 옆에는 부시 전 대통령과 그레그 전 대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놓여 있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주한 미대사로 부임하기 전 6년 반 동안 부시 전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당시 그는 부시 전 부통령과 65개국을 함께 순방할 정도의 측근이자 미국 외교 현장의 ‘거물’로 통했다. 하지만 이란 콘트라 사건(1985~87년)으로 조사를 받게 된 뒤 한국에 부임하게 됐다.

자택에 노 전 대통령이 준 감사패 전시

그는 “부임 당시엔 착잡한 심정도 없지 않았지만 이내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푹 빠지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도 10년간 근무했지만 한국 사람들과 더 잘 맞는 것 같다”며 “한국인과는 함께 불만도 공유하고 뒷말도 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일본인과는 그게 어렵더라”고 회상했다. “한국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자 한국 대사직이 전 세계 외교 공관장 가운데 가장 도전적이고, 흥미롭고, 어려운 자리면서 해야 할 일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의 집안 곳곳에서 한국 사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현관문 밖에서는 장독 두 개가 손님을 맞았다. 한국 고가구는 책꽂이와 탁자로 쓰이고 있었다. 손님용 화장실에도 생활 자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가 세면대 옆을 가리켰는데, 거기에는 1993년 초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분청사기명품전’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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