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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학 이미지 왜곡하는 ‘정치공학’ 표현 유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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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요즘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첨단 산업의 선도국가’가 아닐까 싶다. 1960년 우리나라 5대 수출 품목 중에 오징어가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조선 등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공학기술이 이러한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주역인 공학기술과 공학기술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전근대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치 조선시대부터 뿌리 깊었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회 계급 인식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치공학·사회공학 표현 맞지않아
정치인·언론, 용어 사용 신중하길

우리는 19세기 1, 2차 산업혁명의 황금기에 성리학만 좇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치욕을 겪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닥친 지금도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모든 산업혁명이 그러하듯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도 과학과 함께 공학기술이 있다. 사회가 이러한 공학기술을 존중하고, 발전에 대한 공헌을 제대로 인정할 때 많은 우수한 인재가 진출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일부 지식인들이 과연 공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지 의심이 생길 때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몇 년 전부터 정치인과 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쓰이는 ‘정치공학(政治工學)’이라는 신조어다. 정치공학은 영어 ‘political engineering’의 직역일 거다. 그런데 본래의 뜻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나마도 옛 소련 붕괴 이후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사실 엔지니어링이란 영어에는 공학이라는 뜻 이외에 일을 꾸미고 획책한다는 좋지 않은 의미도 있지만, 한국어로 ‘공학’은 학문의 분야일 뿐 이중적 의미는 없다.

따라서 정치적 수단을 꾀해 권력 유지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정치공작’ 또는 ‘정치획책’ 등으로 써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공학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말하는 사람이 좀 더 유식해 보이거나 권위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려고 특정 학문에 대한 의미를 부정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야흐로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을 만나 ‘정치공작’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일에 정치공학이란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보며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은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보이스 피싱 등 인간관계를 이용한 사기 행위에 대해 최근 한 언론이 ‘사회공학’이라 표현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공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일을 꾸민다는 뜻으로 쓰였다. 해킹 등의 공학기술로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와 인간적 신뢰를 악용해 정보를 빼내고 속인 행위는 전혀 다른 범죄유형인데 오해를 일으켰다.

뜻 모를 신조어가 쏟아지는 시대라지만 어울리지 않는 현상과 학문을 일컫는 말을 조합해 순수한 학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학을 낮잡아보고 ‘인간성이 결여된 술수’란 의미로 사용하면 과연 젊은이들이 공학기술과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왜곡된 인상을 갖게 될지 우려스럽다.

정부는 과학기술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에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5%에 해당하는 27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연구자들의 사명감 없이 투자만으로는 결실을 얻기 어렵다. 그런데 공학을 ‘잔꾀나 부려 나쁜 일을 획책하는 일’로 낮춰보거나 매도한다면 공학도들에게 밥벌이 이상의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공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정치인도 언론도 용어를 신중히 사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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