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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치 지도자의 말은 나라의 얼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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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보영 동서대 겸임교수·전 MBC 아나운서

정보영 동서대 겸임교수·전 MBC 아나운서

대선이 다가오면서 온갖 말이 난무한다. 어지럽다. 표가 된다면 ‘아무 말 대잔치’도 서슴지 않는다. 실언·망언·막말이 쏟아지고 내뱉기 바쁘게 수습하느라 진땀을 뺀다. 경력과 관록을 내세워 특정 정치 진영을 대표한다는 인물들이 대권 경쟁에 나섰지만 하나같이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혹시나 어떤 후보가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줄까 싶어서 방송 토론이라도 볼라치면 역시나 실망하게 된다.

한편으론 궁금한 생각도 든다. 대선 후보들과 캠프에서 내놓는 말들을 보면 편 가르기, 적 만들기, 일방적 말하기가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다. 입으로 총을 쏘고 말 폭탄을 던진다. 말로 상대에 상처를 주니 살벌하다.

대선 다가오자 실언·막말 쏟아내
국민이 공감하게 진정성 담아야

그런데 비단 정치만 그런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말의 잔혹성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놀이를 하면서도 상대가 지면 ‘죽었다’ ‘너 죽었어’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써 왔다. 드라마 속 스피커에서 들리는 술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들으며 우리가 어렸을 때 천진난만하게 놀았던 추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끔찍하게 총살 장면이 벌어진다. 우리가 무심결에 써온 말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소스라치게 깨달은 순간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 시절의 놀이가 모두 입으로 죽이고 살렸다. 순수한 동심이 하는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윷놀이도 고무줄놀이도 공기놀이도 그렇다. 화투놀이에서도 패가 좋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는 표현을 쓴다. 꽤 창조적인 놀이에서도 우리는 입으로 죽고 살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선 탈락이 곧 죽음이다. 입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죽임을 당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은 감시자들의 가면이다. 그 가면에는 눈·코·입·귀가 없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살상을 일로써 수행하기 때문에 망설임이 전혀 없어 더 섬뜩하다.

대선 경선이 진행되면서 후보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상대를 향한 언사는 더 거칠어진다. 역시 망설임이 없이 일방적이다. 오징어 게임의 섬뜩함이 겹쳐진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드라마 ‘상속자들’의 부제로도 쓰였던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말의 무게는 천금과 같다. 왕관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말의 무게를 먼지처럼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허언·실언·망언은 한 가닥 실로 천장에 매달려 정수리를 노리는 ‘다모클레스의 칼(The Sword of Damocles)’처럼 치명적이다. 먼지의 무게라도 못 견딘 실이 끊어지면 비극이다.

대화의 시작은 경청이다. 설득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말을 듣는 것에서 대화와 설득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소음과 굉음에는 귀를 막는다. 진정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이제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진정성이 담긴 가슴으로 말하자. 눈을 맞추고 가슴으로 말할 때 귀가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방식으로 로고스(Logos)·에토스(Ethos)·파토스(Pathos) 세 가지를 들었다. 로고스는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논리적인 말하기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이 믿을 만한지 그 사람의 평판에 대한 항목이다. 파토스는 공감이다. 이 세 가지가 설득의 기본이다. 기본이 제일 어렵다. 말은 생각이고 습관이며 인격이다. 생각하고 말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말하게 된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나라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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