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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복판, 하늘과 맞닿은 은빛 물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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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2일 영남알프스 간월재의 모습. 햇볕을 받아 동녘의 억새밭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11월까지 이런 장관이 이어진다. 억새밭 사이로 깔린 데크 로드로 거닐며 가을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 22일 영남알프스 간월재의 모습. 햇볕을 받아 동녘의 억새밭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11월까지 이런 장관이 이어진다. 억새밭 사이로 깔린 데크 로드로 거닐며 가을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에도 알프스가 있다. 이름하여 영남알프스다. 웅장한 산세, 수려한 풍경 덕에 붙은 이름이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겹겹으로 솟구쳐 있다. 영남알프스는 요맘때 가을이 가장 곱다. 하늘과 맞닿은 간월재 능선은 가으내 은빛 억새가 춤을 춘다. 가을 한복판, 영남알프스 간월재에 들었다.

억새로 물든 33만㎡ 능선

간월재서 굽어본 울주 시내의 모습. 이곳에도 최근 레깅스 차림의 여성 등산객이 크게 늘었다.

간월재서 굽어본 울주 시내의 모습. 이곳에도 최근 레깅스 차림의 여성 등산객이 크게 늘었다.

영남알프스는 크다. 울산 울주, 경북 청도 등 5개 시·군에 걸쳐져 있다. 전국 억새 산행 1번지로 통하는 것도 이 막대한 몸집 덕분이다. 최고봉인 가지산(1241m)을 중심으로 천황산(1189m)·신불산(1159m)·재약산(1108m)·영축산(1081m)·간월산(1069m)·고헌산(1034m) 등이 줄지어 있다. 영남알프스에만 대략 710만㎡(약 214만 평)에 이르는 억새 군락이 있다.

등억온천단지~간월재 구간은 산악자전거족에게 정평이 났다. 고불고불한 비탈길이 많고, 전망도 빼어나다.

등억온천단지~간월재 구간은 산악자전거족에게 정평이 났다. 고불고불한 비탈길이 많고, 전망도 빼어나다.

영남알프스의 오랜 핫플레이스는 간월재(900m)다. 가을 억새철 영남알프스를 찾는 대개의 등산객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담아간다.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울주군 상북면 배내고개(사슴농장) 아니면, 등억온천단지를 들머리 삼는다. 거리는 멀어도, 배내고개 방면의 길이 좀 더 쉽다. 5.9㎞ 내내 임도를 따라 걷는다. ‘산린이(산+어린이)’로 통하는 등산 초보들이 주로 선택하는 길이다. 고불고불한 산길이 이어지는 등억온천단지 구간은 MTB 족의 성지로 통한다.

2시간의 지루한 오르막길, 그 끝에 간월재가 있었다. 33만㎡(약 10만 평). 숫자로는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지만, 눈으로 직접 본 억새밭은 규모가 엄청났다. 능선이 죄 억새였다. 하나하나가 어른 키만 했다. 다들 은빛 파도에 파묻혀 가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억새는 바람이 일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물결쳤다.

컵라면과 은화

억새는 빛에 민감하다. 역광에 비추면 은빛으로, 순광에 비추면 금빛으로 빛이 난다.

억새는 빛에 민감하다. 역광에 비추면 은빛으로, 순광에 비추면 금빛으로 빛이 난다.

간월재는 간월산(1083m)과 신불산(1159m)을 잇는 능선이다. 간월재를 기점 삼아 두 봉우리에 올랐다. 간월산까지 30분, 신불산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안내를 들었지만,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곱절 가까이 시간이 더 들었다. 간월산·신불산 정상에서 천황산·재약산·영축산 등이 한눈에 펼쳐졌다. 신불산 칼바위 너머로 울주 시내에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평일인데도 산에는 등산객이 많았다. 코로나 사태 후 젊은 등산객이 전국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아웃도어 룩으로 무장한 등산객 못지않게 레깅스 차림의 젊은 여성 등산객이 많이 보였다. 간월재 휴게소 매점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이곳의 인기 상품은 컵라면. 매점 관계자는 “요즘은 주말이면 하루 1500~2000개가량의 컵라면이 팔린다”고 전했다.

이른바 ‘은화 마케팅’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울주군이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인증 자에게 기념품을 증정하고 있는데, 올해 6만5000원 상당의 은화로 상품을 변경하면서 신청자가 폭주하고 있단다. 2019년에는 완등 인증 자가 2789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0월 현재 2만2583명이 완등 기념 은화를 받아갔단다. 곽희경(49)씨는 “이미 메달과 배지가 있지만, 은화 때문에 올해 다시 9봉을 완등했다”고 말했다. 마침 신불산 정상에서도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봤다.

다시 간월재로 내려오는 길.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억새는 빛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역광에 비추면 은빛으로, 순광에 비추면 금빛으로 빛이 났다. 간월재에 내려와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억새를 구경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고, 느긋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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