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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률 86% 포르투갈, ‘엔데믹(Endemic)’ 목전에 둔 비결은

중앙일보

입력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EFA)의 SL 벤피카와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열린 20일(현지시간) 벤피카의 홈구장인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 축구팬들이 몰려들었다. 이 구장의 수용인원은 6만여 명으로, 이달 초 수용인원 30% 제한이 풀렸다. 포르투갈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EFA)의 SL 벤피카와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열린 20일(현지시간) 벤피카의 홈구장인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 축구팬들이 몰려들었다. 이 구장의 수용인원은 6만여 명으로, 이달 초 수용인원 30% 제한이 풀렸다. 포르투갈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의 축구 경기장 이스타디우 다 루스. 유럽 챔피언스리그 SL 벤피카의 홈구장인 이곳에선 벤피카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용 인원의 30% 제한 규정이 최근 풀리면서 6만 여 관중석은 빼곡히 찼다. ‘축구의 나라’ 포르투갈 시민들은 들뜬 표정으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장 입장에 앞서 백신 접종을 마쳤다는 그린패스를 제시해야 하고, 마스크 착용이 권장된 것을 제외하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수많은 인파가 지하철ㆍ인근 푸드트럭으로 한꺼번에 몰렸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확산 사태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높은 백신 접종률을 바탕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엔데믹(Endemic)으로 접어들고 있는 포르투갈 현지 풍경을 전했다. ‘엔데믹’은 전염병이 대유행을 거쳐 독감처럼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풍토병으로 정착해가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코로나19를 안고,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올초 팬데믹 포르투갈, “조심스러운 낙관” 

포르투갈 오에이라스시의 백신 접종 센터에서 지난 8월 청소년들이 백신 접종을 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포르투갈 오에이라스시의 백신 접종 센터에서 지난 8월 청소년들이 백신 접종을 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일상 회복을 시도하는 포르투갈에는 어딜가든 손 소독제가 놓여있고, 교회들은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부 의자를 끈으로 묶어뒀다고 한다.

포르투갈 정부는 이달 1일부터 코로나19 제한 정책을 대부분 해제했다. 축구 경기장 등 대규모 시설 출입시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하고 레스토랑과 술집, 대중교통ㆍ학교 등 일부에선 직무와 연령에 따라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유지되고 있다.

포르투갈 국립보건원(INSA)의 코로나19 담당자 주앙 파울루 고메스 연구원은 앞서 “대부분 지역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완화됐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도 해제됐지만 사례가 폭증하지 않고 있다”며 “조심스럽지만 이번 겨울을 낙관한다”고 밝혔다.

포르투갈은 올해 초만 해도 델타변이 확산으로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폭증하는 나라로 분류됐다. 상황은 10개월 만에 반전을 맞았다. 포르투갈의 올해 1월 하루 평균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00명 대였지만, 지난 한 달 간 일일 평균은 한 자리수로 줄었다. 전체 일일 확진자 수도 700~800건으로 연초 1만 3000명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졌다.

25~49세 백신 1차 접종률 95% 

지난달 포르투갈 리스본의 백신 접종 센터의 회복실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이들이 대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포르투갈 리스본의 백신 접종 센터의 회복실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이들이 대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배경에는 높은 백신 접종률이 있었다. 글로벌 집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의 이달 18일 기준 포르투갈의 접종 완료율은 86.8%. 세계 1위(전체 인구의 86%)인 아랍에미레이트(UAE)를 넘어섰다. UAE는 1차 접종률에서 95.9%로 포르투갈(88.5%)을 앞서 있다.

WSJ에 따르면 포르투갈 역시 50세 이상 인구에서는 1차 접종률이 100%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25~49세의 95%, 12~17세는 88%도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다. 활동량이 많은 어린이ㆍ젊은 세대의 접종 속도가 매우 빠르다. 유럽에서 백신을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의 1차 접종률은 73%, 미국도 65% 수준이다.

INSA의 고메스 연구원은 “포르투갈은 12세 이상 청소년들의 백신 접종률이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매우 좋은 편”이라며 “국가 보건 체계의 부담 면에서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영국 ITV 방송ㆍ미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포르투갈의 엔데믹 비결로 ▶군사작전에 가까운 백신 접종 정책 ▶백신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신뢰 ▶일상 회복 이후에도 마스크 착용 권고 등 방역수칙 유지 등을 꼽고 있다.

일등 공신 해군 중장, “전시 작전”

포르투갈의 코로나19 백신 보급 태스크포스(TF) 책임자인 헨리크 고베이아 이멜루 해군 중장이 지난 9월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포르투갈의 코로나19 백신 보급 태스크포스(TF) 책임자인 헨리크 고베이아 이멜루 해군 중장이 지난 9월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포르투갈 정부는 백신 보급 책임자에 보건 전문가가 아닌 군인을 지정했다. 잠수함 사령관 출신으로 유럽연합 해병대를 이끈 헨리크 고베이아 이멜루 해군 중장이다. 엔데믹 전환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이멜루 중장은 백신 보급을 “전투” “전시 동원”이라고 부르며 속도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영국 등 주변국들이 지역 보건소와 같은 소규모 시설을 중심으로 백신을 보급한 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접종 장소로 지역마다 있는 대형 스포츠 경기장을 동원했다. 이멜루 중장이 ‘생산 라인’이라고 부르는 접종 동선도 가장 빠른 흐름을 찾기 위해 리스본 군 병원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한 뒤 도입했다.

백신에 수용적인 포르투갈 시민들의 성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포르투갈은 코로나19 이전에도 국가 차원의 소아 예방 접종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1965년부터 국가가 B형간염ㆍ백일해ㆍ소아마비ㆍ홍역 등 11가지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한다. 리스본대 심리학 연구센터가 올해 5월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포르투갈 부모들은 이 때문에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어린이에게 중요하다”는 인식에 95~98%가 동의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 역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구는 약 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포르투갈 정부의 자체 조사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대의 백신에 관한 태도 추적 조사에서 미국이 25.9%(10월 기준),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21.9%, 20.5%(9월 기준)가 백신에 부정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국의 신중한 태도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높이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발표하면서 “법으로 부과된 의무은 사라지지만, 이제 모두의 책임이 되는 단계가 됐다”며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보급 책임자인 이멜루 중장 역시 지난 달 말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투에서 이긴 것”이라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겼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세계대전(a world war)”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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