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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차 한국인 프리쉐 “베이징선 애국가 부를래요”...귀화 루지 국가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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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귀화 6년 차 프리쉐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루지 최초 메달에 도전한다. 장진영 기자

귀화 6년 차 프리쉐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루지 최초 메달에 도전한다. 장진영 기자

“베이징에서 한국인의 투지를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저 이래 봬도 6년 차 한국인이잖아요. (웃음)”

평창올림픽 8위, 이번엔 메달 도전 #귀화 후 설렁탕 즐기고 BTS 팬 돼 #"동네 주민들 '이린이'라고 불러줘 #독일 국가 잊어도 애국가는 기억"

한국 여자 루지 싱글(1인승) 국가대표 아일린 프리쉐(29)는 졸린 듯 두 눈을 비볐다. 한 달간 유럽(러시아·라트비아) 전지훈련을 마치고 지난 22일 귀국한 그는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 대표팀에 다시 소집됐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와 쉴 틈이 없다. 하루 세 차례, 총 7~8시간 훈련한다.

25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 중인 프리쉐를 만났다. 이날 오전 평창의 기온은 영하 2.6도였다. 프리쉐는 “러시아나 라트비아는 지금 한국보다 훨씬 춥다. 이 정도 추위에 꺾일 정신력이라면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나는 두 번째 올림픽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쉐는 평창올림픽 직후 큰 부상을 겪었다. 극복하는 데만 3년 걸렸다. 장진영 기자

프리쉐는 평창올림픽 직후 큰 부상을 겪었다. 극복하는 데만 3년 걸렸다. 장진영 기자

루지는 선수 한 명이 하늘을 보고 썰매 위에 똑바로 누워서 얼음 트랙에 따라 활주하는 종목이다. 루지 세계 최강국인 독일에서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프리쉐는 성인 무대에선 빛을 보지 못하고 2015년 은퇴했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16년 말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준비했다. 프리쉐는 평창올림픽 여자 루지 싱글 8위에 올랐다. 남녀를 통틀어 올림픽에서 10위 이내의 성적을 기록한 한국 선수는 그가 처음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선 사상 첫 메달도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올림픽 직후 그는 악재를 만났다. 2019년 월드컵 8차 대회 도중 트랙 벽과 충돌해 썰매가 뒤집히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의 오른손이 부러졌고, 꼬리뼈에 금이 갔다. 척추와 목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프리쉐는 시즌을 중단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두 달간 꼼짝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후 재활치료를 받느라 2019~20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지난 시즌인 2020~21년 복귀해 일부 대회를 소화했다.

평창올림픽 당시 홈팬 응원에 손 흔드는 프리쉐. [뉴스1]

평창올림픽 당시 홈팬 응원에 손 흔드는 프리쉐. [뉴스1]

프리쉐는 “올림픽 후 세 시즌을 부상 치료에 썼다.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시즌은 올겨울뿐이다. 올림픽까지 남은 3개월에 내 모든 걸 걸었다”고 강조했다. 루지는 최근 두 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상위 30여 명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준다. 프리쉐는 “현재 몸 상태는 70%다. 가끔 부상 부위가 욱신거리는 정도”라며 “올림픽까지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 정도면 당일 컨디션에 따라 메달을 노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루지 대표팀 주세기 코치는 “프리쉐가 올겨울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재능을 타고난 데다, 지독한 연습벌레라서 베이징올림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프리쉐는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을 보며 마인드 컨트롤한다. 얼음과 눈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데다 주인공 엘사도 자신과 닮아서다. 그는 “엘사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듯, 나도 부상과 경쟁을 이겨내고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애국가를 연습한다. 시상대에 올라 태극기를 보며 완창하기 위해서다. 프리쉐는 “20년간 불러온 독일 국가는 이제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애국가 1절은 잊지 않았다. ‘마르고 닳도록’ 부분 발음이 아직 어렵지만, 꼭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귀화 선수 프리쉐는 트랙 안팎에서 '진짜 한국인'이 되긴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장진영 기자

귀화 선수 프리쉐는 트랙 안팎에서 '진짜 한국인'이 되긴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장진영 기자

프리쉐는 2016년 귀화하면서 독일 국적을 아예 포기했다. 그만큼 ‘진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집을 구해 지난 3년간 살았다. 평소 집 주변 식당에서 삼겹살, 미역국, 설렁탕 등을 즐긴다. 휴식기에는 한국어 학원에 등록해 공부했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은 일부러 가지 않는다고 한다.

프리쉐는 “지금은 진짜 한국인이 된 기분이다. 동네 주민들도 ‘이린아(아일린을 줄인 애칭)’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대표팀 동료들이 한국인이라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바빠서 아직 못 봤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때 빅뱅 팬이라고 밝혔던 그에게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물었다. 프리쉐는 “진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댄스부터 발라드까지 고루 듣고 있다. 물론 방탄소년단(BTS)은 포기할 수 없다”며 웃었다.

루지 대표팀은 다음 달 4일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가 열릴 트랙에서 훈련할 예정이다. 이후 8차례 월드컵 대회를 통해 실전 감각을 쌓은 뒤 베이징에 입성할 예정이다. 프리쉐는 “평창 때 ‘뉴 코리언’으로 불렸다면, 베이징에선 ‘한국인’ 프리쉐의 도전을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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