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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입양 늘던 유기동물, 일상 되찾자 다시 버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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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02면

유기동물의 눈물

‘다시사랑받개’에서 보호 중인 유기견이 방문객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준희 기자

‘다시사랑받개’에서 보호 중인 유기견이 방문객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준희 기자

서울 중랑구에 사는 20대 이지나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두달가량 휴직했다. 하루종일 ‘집콕’ 중이던 지나씨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다양한 반려견 콘텐트를 접했다. 과거 반려견을 키우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입양을 망설여왔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유기견센터를 방문한 이씨는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던 반려견에게 첫눈에 반해 바로 입양을 결정했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던 센터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구조견 몰리(6)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다. 이씨는 “유기견이라고 하면 꾀죄죄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입양 초기 분리불안이 심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싸울 때 몰리가 와서 말릴 정도로 적응을 잘했다”고 했다.

강동리본센터에서 유기묘를 입양한 이경진(40)씨도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머무는 아이들을 위해 입양을 결심했다. 집안에서 동물을 기를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경진씨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양이 남매를 데려와 ‘막내 육묘’에 돌입했다. 이씨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고양이를 돌보며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며 “코로나19로 받은 스트레스를 고양이 덕분에 잊게 됐다”고 전했다.

미국·독일은 보호소 방문 당연시

센터를 통해 입양된 동물들의 사진. 정준희 기자

센터를 통해 입양된 동물들의 사진. 정준희 기자

‘코로나 블루’를 겪던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반려동물 입양을 선택하면서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펫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2021년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29.7%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권행동 카라 이현주 입양팀장은  “코로나19로 집에서만 지내는 일이 많다 보니 외로움을 느껴 유기동물 입양을 희망하는 이들도 예상치를 넘어 늘었다”며 “해외에서도 유기동물 보호소 하나가 통째로 비워질 정도로 입양률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코로나 이전엔 26.4%까지 떨어졌던 유기동물 입양률이 2020년 29.6%까지 증가했다.

코로나 시대에 위안이 됐던 유기동물은 사람들이 서서히 일상을 되찾자 다시 버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등록된 월평균 유기동물 수는 7955마리였지만, 3분기엔 1만769마리까지 증가했다. 하루 평균 약 326마리(19일 기준)의 유기동물이 길에서 구조된 셈이다. 서울유기동물입양센터 ‘다시사랑받개’ 김민진 매니저는 “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고, 사람들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유기된 동물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거리두기로 외출이 어렵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했을 때 반려동물이 필요해 데려갔다가 다시 출근이 가능해지자 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경진씨가 입양한 고양이. [사진 이경진]

이경진씨가 입양한 고양이. [사진 이경진]

파양된 동물들은 보호소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지만,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기기란 쉽지 않다. 앞선 사례처럼 입양을 결심하고 센터에 찾아오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해서다. 보호소에 머무는 것도 잠시. 15~20일 내 주인을 만나지 못한 동물들은 안락사 대상으로 내몰린다. ‘펫 전성시대’가 찾아왔음에도 가족을 만나지 못해 안락사를 당하는 동물 비중은 4년째 20%대에 머문다. 동물 보호 선진국인 미국, 독일의 유기동물 입양률이 각각 58%, 90%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김옥진 원광대 반려동물산업학과 교수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반려동물 입양 시 애완동물 가게가 아닌 보호소를 방문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며 “국가에서도 유기동물 입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우리나라와 달리 유기동물 입양을 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여전히 낮은 유기동물 입양률에 대해 접근성 부족을 지적했다. 일부 봉사자들을 제외하면 유기동물 보호소에 방문할 일이 없어 동물들 또한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육교사였던 김 매니저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던 유기동물센터를 인수해 개방형 유기동물 카페 ‘다시사랑받개’를 오픈한 이유도 유기동물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일반적인 유기견 보호소는 접근성이 낮아 입양 가능성이 큰 아이들도 가족을 만나기 어렵다”며 “입양 계획이 없는 분들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도 “정부가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소의 경우 구조와 반환이 목적이기 때문에 관리 수준이나 접근성이 상당히 낮다”며 “보호소 내 불법 안락사, 병사 등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적극적인 입양 홍보도 하지 않아 보호소를 통한 입양을 꺼리게 한다”고 전했다.

유기동물 입양 문제를 너무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기동물은 오랜 길거리 생활로 건강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사람을 믿지 못해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유기견은 위험하다는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다”며 “유기동물 중에는 정말 큰 문제가 있는 동물도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동물도 있다. 이건 유기동물이 아니라 일반 애완동물 가게에서 입양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막연하게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입양했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입양 전 오랜 시간 아이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가족과 잘 맞는 아이를 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10월 한달간 동물등록 여부 특별단속

유기견 입양 경험이 있는 신은제(20)씨는 “유기견들이 일반 반려견보다 수명이 짧고, 병치레도 많이 하는 건 사실”이라며 “강아지도 다양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충분하게 고려해서 입양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같이 살 아이를 정하는데 ‘외로우니까 같이 있고 싶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도 유기동물 증가를 막기 위해 제도 보완에 나섰다. 지난 9월 민법상 물건의 정의에서 동물을 제외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서 향후 동물 권리와 보호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동물에게도 법적 지위가 부여돼 동물 유기, 학대에 따른 처벌도 강화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민법상 반려동물의 개념을 신설하고, 반려동물 압류 금지 법안 등 후속 조치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 후에도 실제 효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려동물 보호를 위해 마련된 동물 등록제, 동물보호법 등에 여전히 빈틈이 많아서다. 지난 5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유기동물의 발생 원인을 묻자 동물 유기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고(58.5%), 단속과 수사도 미흡하기 때문(35.5%)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2014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제가 시행됐지만, 시행 기간에 비해 등록률이 높지 않다”며 “반려동물 등록을 하지 않아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없고,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으니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어 “해외처럼 반려동물 등록 여부를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등록 후에도 매년 정보를 갱신하도록 하는 등 반려인들의 책임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옥진 교수도 “현재 반려동물 등록제는 반려견의 경우에만 의무화되어 있어 반려묘나 기타 반려동물은 법적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며 “지자체별 관심도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는 동물 등록제, 유기동물 입양 절차 등을 통일해야 실효성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0월 한 달간 공원 등 반려동물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에 단속반을 투입해 동물등록 여부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김지현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은 “이번 집중단속이 동물보호법이 규정한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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