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탈원전'에 각 세운 한수원 사장 “원전없이 탄소중립 불가능”

중앙일보

입력 2021.10.21 19:11

업데이트 2021.10.21 21:07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 질문 받고 있다. 왼쪽은 김혜정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국회사진기자단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 질문 받고 있다. 왼쪽은 김혜정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국회사진기자단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수원 CEO(최고경영자)로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가 건설 재개가 돼 (원전 생태계가) 숨통을 틔웠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17년 공사가 중단됐다. 정 사장의 발언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정 사장은 특히 현 정부의 원전 폐쇄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게 되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현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명연장 없이 설계수명 기간만 가동한 후에 폐쇄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정 사장은 “현재까지 나와 있는 기술로 보면 2050년 ‘넷제로’(net zero·탄소 순배출량 0)로 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답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18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사실상 확정했다. 이런 계획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원전 비중 축소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정 사장은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원전 없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탄소중립을 위해) 확정되지 않은 기술보다도 SMR(소형모듈원자로)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을 (정부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원자력이 탄소중립에 해가 되냐”고 묻자 “원자력은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 의뢰로 작성한 ‘2030년 전원구성에 따른 탄소배출량’ 보고서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설계수명만 연장하더라도 2030년까지 40.3%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업계가 어렵다고도 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저번에 말했다”며 “원전부품 벨류 체인이 중소기업부터,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이 현실 아니냐”고 물었다. 정 사장은 “굉장히 어렵다”고 답했다.

공기업 사장이 정부 정책과 각을 세우는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정 사장의 발언을 두고 “소신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정 사장이 원래도 여당, 야당 안 가리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인데 오늘은 더 나아가 소신 있게 말했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공원 인근 도로에서 경북 울진 군민들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신한울 3,4호기 원전 원안대로 건설을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공원 인근 도로에서 경북 울진 군민들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신한울 3,4호기 원전 원안대로 건설을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월성 1호기 원전 폐쇄 과정에서 위법성이 드러나지 않았나. 정권이 바뀌면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의 문제가 더 드러날 텐데, 정권 교체기다 보니 정 사장이 ‘난 소신 있게 했다’고 보여주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한울 3·4호기와 관련해 배임 이슈도 있다.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중단되기 전 약 7900억원이 투입됐는데, 이 중 4927억원은 두산중공업이 원자로 설비 제작 등에 투입한 금액이다. 건설이 아예 취소되면, 두산중공업은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정 사장의 업무상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이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사장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가동중단 지시를 받고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조작을 한 혐의(배임)로 지난 6월 기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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