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의 우의속에 딴 메달의 영광(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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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젠 국민 생활체육에 눈돌릴 때
3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아시아의 단결과 화합,저력을 세계에 다시 한번 과시하고 그 막을 내렸다. 물론 이번 대회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스포츠의 정치화,상업주의,탈 아마추어리즘의 경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라크 출전금지조치,주최국의 메달획득에 집착한 대회조직과 운영,경기장은 물론 선수들의 경기복에도 빼놓치 않고 얼굴을 내민 상업광고 등 스포츠의 순수성은 이곳 저곳에서 오염되고 굴절됐다.
그러나 역시 전체적으로는 이번 북경아시안게임도 아시아인들이 그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드높이고 승자와 패자가 다정히 악수할 수 있는 화합의 마당을 마련했으며 그 점만으로도 뜻있는 축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스포츠가 정치화 함으로써 스포츠정신 자체에는 얼룩졌으나 역설적으로 그로해서 더 크게 화합에 이바지한 경우도 있었다. 분단국가인 남북한과 중국ㆍ대만간의 만남이 그것이다. 특히 남북한의 경우는 공동응원단까지 구성하고 체육교류에도 합의함으로써 단순한 만남 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기로 했다.
선수ㆍ임원들 사이에서나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본 국내의 국민들 사이에서도 과거와 같은 대결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통일과 민족동질성의 회복을 위해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메달획득 목표에는 미달했으나 출전선수들은 잘 싸워 주었다.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의 패배에 자극받아 한국추월을 다짐했던 일본을 여유있게 누르고 2위를 확보한 선수ㆍ임원들의 분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이번 대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년뒤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더 좋은 성적으로 또 한번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기를 당부하고 격려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아시아 제2위의 성적이 가져다 주는 참다운 의미가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국력이 아시아 제2위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의 건강과 체력이 바로 그렇다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은 이에 대해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우리 스포츠인들의 기량이 제2위라는 것 뿐이다.
이는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경기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거두는 우수한 성적이 가져다 주는 효과가 결코 작지는 않다. 각국이 메달 경쟁에 국력을 쏟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국위를 크게 떨치게 하고 국민의 정신적 일체감과 진취적 기상을 형성케 해준다. 그러나 만약 그 의의가 이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스포츠의 엘리트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진흥의 제1차적 목적은 역시 국민전체의 건강과 체력증진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의 생활화를 통해 국민전체의 체력과 운동기능이 뛰어나게 되고 그중에서 뽑힌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이어야 그 우수한 성적은 진실로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스포츠 엘리트주의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은 그동안 스포츠 엘리트의 집중적인 육성과 그들의 활약을 통해 근ㆍ현대사의 기간동안 쌓이고 쌓인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만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해소한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 우리들이 주력해야 할 것은 스포츠 진흥의 제1차적 목적인 국민체육을 진흥하는 일인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체력단련에 대한 욕구는 높지만 체육시설이라고는 각급 학교 운동장까지 포함해도 인구 2천명당 1곳꼴인 실정이며 그나마 전체 체육시설의 90%가 학교운동장이나 학교 체육관이다. 일반인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체육시설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형편에서 몇몇 집중 육성된 선수들이 거둔 성적에 마냥 도취해도 좋을 것인가. 스포츠진흥의 기본방향과 스포츠에 쏟는 국력의 올바른 배분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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