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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당 4만원씩…전북 ‘책꾸러미 사업’ 대형서점 쏠림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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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지난 12일 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초등학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 잘 익은 언어들]

지난 12일 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초등학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 잘 익은 언어들]

“어마어마한 예산을 써서 늘 영업만 하는 서점들만 배 부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나요?”

전북 전주에서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을 운영하는 이지선 대표가 최근 본인 페이스북에 “지금 학교도, 서점들도 난리가 난 상황”이라며 올린 글이다. 지난달 전북교육청이 도내 모든 학생에게 1인당 4만원 상당의 도서를 지원하는 ‘책 꾸러미’ 사업을 시작한 것을 두고서다.

전북교육청은 모든 학생이 책을 사서 볼 수 있게 막대한 예산을 책정했는데, 동네책방들은 왜 반발하는 걸까. 19일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책 꾸러미’ 사업은 도내 공·사립 유·초·중·고·특수학교 재학생 21만3890여 명에게 책 구입 명목으로 총 85억5580여만 원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책 읽기를 통해 코로나19로 위축된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회복을 돕는 게 목적이다. 모든 학생에게 책 구입비를 지원하는 지역은 전국에서 전북이 유일하다는 게 전북교육청의 설명이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학교마다 책을 선정 중이고, 2학기 안에 책 구입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교육 과정과 연계해 학부모 추천, 책방 나들이 등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책을 구매하면 된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대형서점·온라인서점이 아닌 지역 동네책방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동네책방들은 “학교 상당수가 기존에 거래하던 서점에 책을 주문하거나 총판 등 영업망과 자금력을 갖춘 중·대형 서점이 에코백 제공 등 부가적 혜택을 내세워 계약을 휩쓸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서점을 살리자는 애초 사업 목적에 반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취지다.

전주 지역 동네책방 10곳이 모인 ‘전주책방네트워크’의 회장인 이지선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학교에서 ‘에코백을 줄 수 있냐’, ‘책값을 20% 할인해 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며 “명백한 도서정가제 위반이고, 그만큼 서점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큰 서점은 학교 몇 군데와 통째로 계약을 맺어 한번에 수억원을 벌지만, 동네책방들은 계약하는 곳이 드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북교육청 측은 “큰 서점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책 선정과 도서 구입 방법·시기 등을 다양하게 열어둬 학교마다 상황에 맞게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작은 책방들이 너무 영세하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서점에 책값 10% 할인을 무조건 요구하거나 에코백 등 부수적 혜택을 계약 조건에 넣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취지의 공문을 각 학교에 다시 보낸 상황”이라며 “교육청이 특정 서점에서 책을 사라고 안내할 수 없어 전주시의 ‘책쿵20’ 사업도 전주시 차원에서 각 학교에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앞서 전주시는 지난 8월 지역 서점 32곳에서 책을 사면 정가의 20%를 포인트로 지급해 책값을 할인해 주는 ‘책쿵20’을 도입했다.

출판사들도 ‘책 꾸러미’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특정 출판사를 안내할 수는 없지만, 출판사 자체적으로 학교 측에 신간 안내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지역 서점가에서는 “동네책방들도 책방을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표는 “내년부터 책방지기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을 각 학교에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북의 지역 서점은 2019년 12월 기준 모두 110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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