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설화의 진짜 주인공은 농경을 가져온 환웅"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11:51

업데이트 2021.10.14 15:36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국사기』는 정사, 『삼국유사』는 야사,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삼국유사』야말로 한국 역사의 틀을 잡아주고 근본을 다지게 해준 역사서입니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삼국유사』라고 하면 대개 건국 설화나 불교 관련 민담을 모은 이야기책 정도로 여기는데, 당대 정치·사회적 고민과 사관을 담아 편찬한 훌륭한 역사책”이라고 강조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것은 몽골과의 항쟁기였다. 이를 위한 프로파간다적 메시지도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국립중앙박물관장·문화재청장·문화부장관 등 3개 요직을 거쳐 2013년 강단으로 복귀한 그는 2018년 정년퇴임한 뒤 『삼국유사』와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낸 『삼국유사 읽기』는 대중에게 『삼국유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야겠다는 평소의 갈증을 푼 대중교양서다. 11일 고려대 인근에 마련한 연구실에서 최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고조선을 집어넣었다.
『삼국사기』가 신라 건국부터 멸망까지 1000년 정도의 시간적 범위를 다루고 있다면 『삼국유사』는 고조선부터 고려 건국까지 약 3000년이 넘는 시간적 스케일을 갖고 있다. 또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북부여, 동부여, 발해까지 다루면서 공간적으로 한반도와 만주뿐 아니라 요하 지역과 연해주까지 한국역사의 영역으로 넓혔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소중한 근거다. 또 가야의 건국과 역사를 다룬 덕분에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도 반박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억불 정책을 내세운 조선이 건국한지 2년 만에 승려가 집필하고 불교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삼국유사』가 역사의 시작점으로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을 내세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군 설화를 기록한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사실 단군 설화에서 단군의 내용은 얼마 없다. 진짜 주인공은 환웅이다. 천제의 아들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것은 농경의 시작을 의미한다.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준 것도, 웅녀와 결합해 단군을 낳은 것도 주체는 환웅이다. 정작 단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런데 몽골과의 항쟁이나 이후 일본강점기 등을 거치며 건국신화가 강조되면서 환웅보다 단군이 주목받게 됐다. 
오늘의 인물 단군

오늘의 인물 단군

『삼국유사』가 해양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김수로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야기나, 석탈해가 신라에 가기 전 금관가야에서 김수로와 다투다가 패하자 급히 선단을 이끌고 신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에 가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항해술과 해상로가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수중릉을 만든 문무왕, 한·중·일 무역의 중심이 되어 서해를 장악한 장보고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삼국유사』에 남겨진 소중한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이만큼 풍부하게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록하지 않았다.
왜 바다를 강조했을까 
고려 시대는 벽란도를 통해 활발한 국제 무역을 했다.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며 'Coree'라고 불리다가 지금의 'Korea'가 됐다. 시선이 바다에 있었던 나라다. 또 대몽항쟁기를 거친 그의 개인적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하고 바다에 약한 몽골군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던 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 
 『삼국유사』[사진 문화재청]

『삼국유사』[사진 문화재청]

다른 역사서에 비해 민중의 비중이 두드러진다고 봤다
『삼국사기』「열전」에는 86명의 인물이 기록되었는데 대부분 장군, 재상, 화랑, 유학자 등 지배층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일반 서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거타지는 일반 병사 신분인데도 활약상을 자세히 전하고, 미시랑은 평민이지만 화랑의 으뜸인 국선(國仙)이 됐다. 심지어 여종도 주인공이 된다. 여종이었던 욱면은 주인인 귀족보다 먼저 성불의 길에 오른다. 이것은 몽골과의 항쟁과정에서 지배층뿐 아니라 피지배층까지 모두 힘을 합쳐야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과의 항쟁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 같다. 
베트남도 몽골 간섭기에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을 편찬했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남겨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베트남 민족의 기원과 국가 형성에 관한 신화를 수록한 베트남 최초의 문헌이다. 『삼국유사』와 『영남척괴열전』은 글쓰기의 수준과 방법, 내용 등이 매우 비슷하다. 또 서두에 건국 시조의 신화를 수록하고 제왕을 앞세운 뒤 승려와 평민의 이야기를 수록한 점도 흡사하다. 아시아에서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끝까지 저항한 것이 고려와 베트남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편 최 명예교수는 14일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 왕경의 사찰과 정원, 분황사지·구황동 원지'를 주제로 학술대회에 참여해 '신라왕경의 사찰과 원지 유적의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경주에는 월성의 동서남북 네 곳에 따로 왕궁과 연못이 조성됐다. 이것은 제의와 휴식의 공간으로 신선이 되고자 하는 도교적 이상향을 추구한 신라인의 로망을 보여준다"며 "왕궁은 유교적 예제로 건축하면서 왕경 주위와 핵심지역엔 불교 사찰이 들어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왕경의 경계는 도교적 이궁(異宮)을 조성해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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