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스로 '도둑' 된 경찰, 신체 마비 50대男 구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21.10.11 15:13

업데이트 2021.10.11 17:18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이 지난 7일 신체 마비로 36시간 동안 집 안에 방치된 50대 남성에 대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남파출소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이 지난 7일 신체 마비로 36시간 동안 집 안에 방치된 50대 남성에 대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남파출소

뇌졸중 증상으로 몸에 마비가 와서 집안에 사실상 갇혀버린 50대 남성이 경찰관의 기지로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이 남성은 36시간 동안 집안에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돼 36시간 동안 집 안에 방치된 50대 남성 김모씨를 지난 7일 오후 구조했다고 11일 밝혔다.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 안 된다”…신고 확인 나선 경찰

경찰이 출동한 것은 신고 덕분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9시 37분쯤 김씨의 지인 3명이 이 파출소를 찾아 왔다.

“오늘 김씨를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 집에 가보니 불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고 신고했다. 김씨와 신고자들은 사업적 관계로 당일 오전 출판 관련 계약을 위해 만나기로 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이 파출소 2팀장인 박정수 경감(39)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엔 허위 신고를 통한 만남 추진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경찰이 나서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박 경감은 “하지만 그날은 직원이 ‘신고자들이 김씨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다.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집 안에 36시간 동안 방치됐던 50대 남성이 지난 7일 오후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 사진 한남파출소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집 안에 36시간 동안 방치됐던 50대 남성이 지난 7일 오후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 사진 한남파출소

불 켜진 실내, 열린 창문…위급 상황이라 판단 정황 

장이태(48) 경위와 홍세환(29) 경장은 당일 오후 9시 44분쯤 관내 김씨가 거주하는 빌라로 출동했다. 신고자의 말대로 김씨가 사는 2층 실내 불은 켜져 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집 앞에는 당일자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었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는 상태였다.

두 경찰관은 김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직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인척 동의 없이는 함부로 문을 개방할 수 없는 데다 절차대로 하다간 시간이 지체될 것이 우려됐다.

그 순간 묘수를 찾았다. 집 내부 상황이라도 신속히 파악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현관문 외에 다른 출입 경로를 살폈다. 그러던 중 열려 있는 2층 김씨의 집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홍 경장은 건물 외벽 가스 배관을 잡고 3m가량 올라가 창문을 통해 실내를 들여다봤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신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2팀 경찰관들. 왼쪽부터 홍세환(29) 경장, 최진이(26) 순경, 박정수(39) 경감, 장이태(48) 경위. 김지혜 기자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2팀 경찰관들. 왼쪽부터 홍세환(29) 경장, 최진이(26) 순경, 박정수(39) 경감, 장이태(48) 경위. 김지혜 기자

“1인 가구 안전 시스템 고민해야” 

홍 경장은 집으로 진입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7조(위험 방지를 위한 출입)에 의거해 재량적 판단을 한 것이다. 주거지에 들어간 홍 경장은 방 안에서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김씨를 발견했다. 36시간째 방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 경위는 “요구조자 바로 옆에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손이 닿지 않아 119에 신고를 못 했다고 하더라. 동거인 없이 김씨 혼자 사는 것 같았다”라며 “목이 마르다고 해 물부터 마시게 했다”고 전했다.

경찰관들은 소방에 연락해 김씨를 서울 모처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김씨는 오른쪽 뇌 손상으로 신체 왼쪽이 마비돼 현재 약물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경장은 “현장에서 매번 최악과 최선의 시나리오를 그리며 상황 판단을 하는데 쉽진 않다”며 “한시라도 빨리 요구조자를 발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장 경위는 “50대 남성인 김씨의 건강에 평소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는 지인들의 얘기에 비춰봤을 때 이번 사건이 1인 가구의 사회 안전망과 복지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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