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증상으로 몸에 마비가 와서 집안에 사실상 갇혀버린 50대 남성이 경찰관의 기지로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이 남성은 36시간 동안 집안에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돼 36시간 동안 집 안에 방치된 50대 남성 김모씨를 지난 7일 오후 구조했다고 11일 밝혔다.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 안 된다”…신고 확인 나선 경찰
경찰이 출동한 것은 신고 덕분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9시 37분쯤 김씨의 지인 3명이 이 파출소를 찾아 왔다.
“오늘 김씨를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 집에 가보니 불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고 신고했다. 김씨와 신고자들은 사업적 관계로 당일 오전 출판 관련 계약을 위해 만나기로 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이 파출소 2팀장인 박정수 경감(39)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엔 허위 신고를 통한 만남 추진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경찰이 나서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박 경감은 “하지만 그날은 직원이 ‘신고자들이 김씨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다.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불 켜진 실내, 열린 창문…위급 상황이라 판단 정황
장이태(48) 경위와 홍세환(29) 경장은 당일 오후 9시 44분쯤 관내 김씨가 거주하는 빌라로 출동했다. 신고자의 말대로 김씨가 사는 2층 실내 불은 켜져 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집 앞에는 당일자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었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는 상태였다.
두 경찰관은 김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직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인척 동의 없이는 함부로 문을 개방할 수 없는 데다 절차대로 하다간 시간이 지체될 것이 우려됐다.
그 순간 묘수를 찾았다. 집 내부 상황이라도 신속히 파악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현관문 외에 다른 출입 경로를 살폈다. 그러던 중 열려 있는 2층 김씨의 집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홍 경장은 건물 외벽 가스 배관을 잡고 3m가량 올라가 창문을 통해 실내를 들여다봤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신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1인 가구 안전 시스템 고민해야”
홍 경장은 집으로 진입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7조(위험 방지를 위한 출입)에 의거해 재량적 판단을 한 것이다. 주거지에 들어간 홍 경장은 방 안에서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김씨를 발견했다. 36시간째 방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 경위는 “요구조자 바로 옆에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손이 닿지 않아 119에 신고를 못 했다고 하더라. 동거인 없이 김씨 혼자 사는 것 같았다”라며 “목이 마르다고 해 물부터 마시게 했다”고 전했다.
경찰관들은 소방에 연락해 김씨를 서울 모처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김씨는 오른쪽 뇌 손상으로 신체 왼쪽이 마비돼 현재 약물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경장은 “현장에서 매번 최악과 최선의 시나리오를 그리며 상황 판단을 하는데 쉽진 않다”며 “한시라도 빨리 요구조자를 발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장 경위는 “50대 남성인 김씨의 건강에 평소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는 지인들의 얘기에 비춰봤을 때 이번 사건이 1인 가구의 사회 안전망과 복지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