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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바퀴 돌아 폭탄 됐다…'죽은 백인의 옷'이 만든 쓰레기 산

중앙일보

입력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 [미국 CBS 뉴스 방송 캡처]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 [미국 CBS 뉴스 방송 캡처]

매주 1500만벌의 중고 의류가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도착한다. 북미, 유럽, 호주인들이 '기부한' 옷이 가나로 온 것이다. 옷들은 커다란 꾸러미에 묶인 채 5000개 이상의 포장마차가 있는 시장에 하역된다. 상인들은 이 옷들을 꾸러미당 25~500달러(약 3만~59만원)에 산다. 이들은 옷 꾸러미를 '죽은 백인의 옷(Dead white man's clothes)'이라 부른다. 물건이 얼마나 괜찮은지는 꾸러미를 풀어야 알 수 있다. 상인들은 옷을 판매하기 위해 세탁하고 다시 재단하거나 염색을 한다.

하지만 재활용 옷들이 점점 더 안 팔리고 있다고 한다. 꾸러미 안에 든 옷들이 애초 팔 수 없거나 되팔지 못할 품질이라서다. 이렇게 '기부' 형태로 넘어온 서구인들의 옷이 가나에서 '쓰레기 폭탄'이 되고 있다고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Vox)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가나는 인구 3000만명 규모의 나라다. 여기에 매주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옷이 도착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가나는 한해 수십억 벌의 옷을 처분해야 한다.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 [미국 CBS 뉴스 방송 캡처]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 [미국 CBS 뉴스 방송 캡처]

미국 CBS 뉴스에 따르면 가나에 도착한 중고 의류의 40%가 매립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비가 오면 쓰레기 산을 이룬 옷들이 가나의 해변으로 쓸려 내려간다. 거대한 문어 다리처럼 모래사장을 뒤덮는다.

왜 그런 걸까. 복스는 패스트패션 산업이 가나에 옷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스트패션이 대량으로 생산한 옷들은 중고로서 값어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꾸러미 속에 재판매할 만한 물건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복스는 "상인들이 옷을 되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일도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CBS 뉴스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미국인이 구매한 의류의 양은 5배 증가했지만, 각각의 옷을 착용한 횟수는 평균 7번에 불과했다. 미국인들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의류를 버렸고, 자선 단체에 기부했지만 이미 미국에서도 재판매될 수 있는 품목의 옷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매년 수백만 벌의 의류가 해외 시장으로 팔려 나간 이유다.

복스는 어떤 기업이나 국가도 가나의 폐기물 위기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인 아자 바버는 서구 패션 회사에 옷을 생산할 때, 폐기물과 씨름하는 남반구 사람들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아크라 시의회의 폐기물관리국장 솔로몬 노이는 CBS 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기부라는 말 뒤에 숨어 우리에게 문제를 떠넘기지 말고 중고 옷들을 직접 처리하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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