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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92) 늦저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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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늦저녁
-정수자(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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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는 이

등에서 문득
주르르륵

모래 흘러내려
어둠 먹먹해져

지나던
소슬한 바람

귀 젖는다

명사(鳴沙)······

-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우리는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늦저녁에 인사동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 많던 외국인이며 노점 상인을 찾을 길 없다. 철시(撤市)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 혼자 밥 먹는 이의 쓸쓸한 모습. 등에서 문득 주르르륵 모래가 흐른다. 먹먹한 어둠. 소슬한 바람에 귀가 젖으니 모래 울음 탓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삶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영업자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현실에서 보는 듯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김춘식 문학평론가는 “그녀의 시가 공동체적인 것보다는 고독과 외로움을, 그리고 불켜진 환한 세상보다는 어둠 속에 은닉되어 있는 근원 또는 희망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했다.

정수자 시인은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1984년 세종대왕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저녁의 뒷모습’ 등의 시집이 있고, 중앙시조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