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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는 전주, 울산 '스타리아' 원했다...현대차 노노싸움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월 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뉴스1

전주공장·울산4공장 노조 '물리적 충돌' 

지난달 30일 오후 3시30분쯤 울산광역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 현대차 전주공장 노조 대표인 A의장이 울산4공장 노조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119구급차에 실려 갔다.

현대차 전주공장 등에 따르면 A의장 등 전주공장 노조원 30여 명은 이날 오후 1시 열릴 예정이던 제4차 고용안정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울산4공장 노조원 200여 명이 본관 입구를 막으면서 노조 간 물리적 충돌로 번졌다.

2시간 넘게 대치하던 양측은 몸싸움까지 벌였다. 울산4공장 노조원 일부가 출근해 본관 입구를 봉쇄한 인력이 50여 명으로 줄어들자 전주공장 노조원들이 재차 공장 진입을 밀어붙이면서다.

이 사건으로 허리 등을 다친 A의장은 병원 치료를 받고 현재 자택에서 회복 중이다. 양측 노조원 가운데 A의장 외에 다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전주공장 노조 측은 "당시 전주공장 조합원들이 울산4공장 대의원들을 뚫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들이 A의장을 밀치면서 폭행을 가했다"며 "조합원끼리 발생한 일이라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월 27일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전북 상용차 위기 대응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월 27일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전북 상용차 위기 대응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공장 간 물량 배분 두고 갈등

현재 현대차 전주공장의 조합원은 4400명이고, 울산공장은 울산4공장 3300명을 포함해 2만 명이 넘는다. 도대체 현대차 노조는 무엇 때문에 동료끼리 극한 대립을 하게 된 걸까.

사건의 발단은 현대차 공장 간 물량 배분 문제에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차 등에 따르면 버스와 트럭, 대형 밴 등 상용차를 주로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의 최대 생산 능력은 연간 10만5000대 수준이지만, 상용차 판매 부진과 코로나19 사태 등 악재가 겹쳐 최근 3만5000~4만 대 규모로 줄었다.

이 때문에 전주공장 직원들은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전주공장 노조 관계자는 "현재 전주공장 생산량이 2014년 6만9000대의 반 토막이다 보니 2년 전 직원 300여 명이 전환 배치됐고,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버스부 조합원들이 물량이 없어 한 달간 휴가를 다녀오는 등 가동률이 30%도 안 된다"며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여서 쉬면 급여도 깎인다"고 했다.

지난 8월 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 "고용 불안"…울산 "스타리아는 못줘" 

반면 울산4공장은 공장 가동률이 안정적이다. 이번 4차 고용안정위원회는 전주공장 물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울산공장의 물량 일부를 넘기기 위한 노사 협상 자리였으나 노조 간 충돌로 무산됐다. 고용안정위원회는 앞서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17일까지 이미 3차례 회의가 열린 상황이었다.

사측은 울산4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타리아 3만6000대 중 8000대가량을 전주공장으로 옮기고 팰리세이드 2만 대를 증산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울산4공장 노조는 "팰리세이드 물량에 대해서는 전주공장 이관을 동의하지만, 스타리아는 절대 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팰리세이드는 미국에서 주문이 몰려 회사가 미국 현지 생산을 검토하는 차종이지만, 스타리아는 전주공장에 물량을 빼앗기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7월 8일 주한 외교사절단과 외신기자들이 전북 완주군 봉동읍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8일 주한 외교사절단과 외신기자들이 전북 완주군 봉동읍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울산공장서 전주공장에 물량 주는 건 처음" 

지난달 29일에도 울산4공장 노조 측은 "스타리아 이관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며 전주공장 노조원들을 가로막았다. 전주공장 노조 관계자는 "울산공장에선 그동안 3공장에서 만드는 걸 2공장에 물량을 나눠주는 식으로 고용 안정을 유지해 왔는데, 전주에 물량을 가져오는 건 25년 만에 처음이라 반발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팰리세이드든, 스타리아든 전주공장에 물량을 주기만 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현실적인 차종(스타리아)을 달라는 것"이라며 "스타렉스의 후속 모델인 스타리아는 100억원을 들여 6개월이면 생산 설비 구축이 가능하지만, 팰리세이드를 생산하려면 3000억원에다 26개월이나 걸려 전주공장에서는 생산이 어려운 차종"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5월 15일 평택항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수출되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500대 중 1차 선적분 250대를 선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5일 경기도 현대차 김포 스튜디오에 다목적 차량(MVP) '스타리아'가 전시돼 있다. 뉴스1

노조 대표들, 공식 사과 요구

폭행 사건 이후 현대차 남양·아산·전주·정비·판매·모비스 노조 대표 등은 공동 성명서를 내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면 노동조합은 수명을 다한 것"이라며 울산4공장 노조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해 30명의 노조 대표가 전주공장의 물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안정위원회를 열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해 놓고, 일방적으로 회의 진행을 막은 것은 문제"라는 취지다.

노조 간 갈등에 대해 사측은 관망하는 입장이다. 현대차 전주공장 관계자는 "노-노 간의 갈등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따로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전북 지역 정치권에서는 현대차 전주공장의 '일감 부족 사태' 장기화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앞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아서다.

송지용 의장과 최영일 부의장 등 전북도의회 의장단(오른쪽)이 지난달 2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지용 의장과 최영일 부의장 등 전북도의회 의장단(오른쪽)이 지난달 2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도의회 의장단, 울산공장 방문…사측 "상생 모색" 

전북도의회 송지용 의장과 최영일 부의장은 지난달 2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이상수 지부장 등 노조 임원진과 최준형 부사장을 만나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송 의장 등은 "전주공장 물량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직원들의 고용 불안과 부품·협력업체의 경영난은 물론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으로 이어지는 만큼 노사 간 통 큰 협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자동차가 2025년까지 플라잉카, 수소모빌리티 등에 총 60조원을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수소 상용차를 생산하고 수소충전소를 갖춘 전주공장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준형 부사장은 "전주와 울산공장 모두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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