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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마주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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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신임 총리가 일본인 납북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마주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4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납치 문제는 중요한 과제”라며 “모든 납치 피해자를 하루라도 빨리 송환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라고도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의 뒤를 잇는 기시다 총리 내각은 이날 공식 출범했다. 내각의 65%를 새로운 얼굴로 채웠지만, 외교·안보 정책을 책임지는 외무상·방위상은 그대로 유임돼 한·일 관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과 함께 다음 주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고 오는 31일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취임한 기시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이날 오후 임시국회에서 중·참의원 지명선거를 거쳐 일본의 100대 총리가 됐다. 총리 지명이 끝난 후 연정 상대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와 회담을 열어 연립내각 구성을 협의한 후, 새 내각의 각료 명단을 발표했다.

기시다 내각은 자민당 실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의 측근에 요직을 몰아준 후, 기타 장관직에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한 모양새다.

기시다 내각, 65%가 뉴페이스 … 고노·이시바파는 배제

4일 도쿄 왕궁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기시다 후미오(앞줄 가운데) 일본 신임 총리 내각. 내각의 65%를 새 얼굴로 채웠지만, 외무상·방위상은 유임 돼 한·일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4일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고 이달 31일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4일 도쿄 왕궁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기시다 후미오(앞줄 가운데) 일본 신임 총리 내각. 내각의 65%를 새 얼굴로 채웠지만, 외무상·방위상은 유임 돼 한·일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4일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고 이달 31일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우선 총리의 ‘입’ 역할이자 내각 이인자인 관방장관에는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전 문부과학상이 발탁됐다. 마쓰노는 아베 전 총리와 같은 호소다(細田)파로 자민당 내 보수강경파의 대표주자다. 2012년에는 아베 전 총리와 함께 미국 뉴저지 지역 신문인 ‘스타레저’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 책임을 부정하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문부과학상으로 재직했던 2017년에는 중·고등학교 사회 과목에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하는 학습지도요령을 확정하기도 했다.

새 재무상에는 아소 부총재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전 환경상이 임명됐다. 재무상 겸 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아소가 자신의 자리를 처남에게 물려준 셈이다. 경제산업상으로 자리를 옮긴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도 아베의 최측근이다. 하기우다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현직 각료 신분으로 태평양전쟁 1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여러 차례 참배하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그대로 유임된다. 외교·안보 정책의 변화보다는 연속·안정성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아베 정권이었던 2019년 10월 외무상에 임명된 모테기는 스가 내각에 이어 기시다 내각에서도 외교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이어가게 됐다.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악화한 한·일 관계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시다 내각 관료 명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기시다 내각 관료 명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총리를 제외한 20명의 각료 중 13명은 이번에 새로 입각한 신인들로 채워졌다. 1년 전 출범한 스가 내각에서 처음 입각한 각료가 5명에 그쳤던 것과 대비된다.

새로 각료에 기용된 인물 중에는 중의원 3선의 젊은 의원들이 눈에 띈다. 디지털상으로 발탁된 마키시마 가렌(牧島かれん·44) 당 청년국장, 올림픽·백신담당상이 된 호리우치 노리코(堀内詔子·55) 전 환경부(副)대신, 신설되는 경제안보담당상에 임명된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6) 전 방위정무관 등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와 겨룬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상이 지방창생담당상에 임명된 것을 비롯해 여성은 3명이 입각했다. 아사히신문은 4일 새 내각에 대해 “노장파와 소장파의 균형을 잡고, 그 안에서 ‘기시다 컬러’를 드러내려 한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와 경쟁했던 고노 진영은 이번 인선에서 배제됐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담당상은 자민당 홍보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상 강등됐고, 스타 장관이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고노를 지지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의 이시바파는 이번 인선에서 한 자리도 얻지 못하는 홀대를 당했다.

기시다는 총리 취임 직후 중의원을 해산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오는 14일 중의원 해산 선언, 19일 선거 공시, 31일 투·개표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들며 자민당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세를 몰아 총선까지 끝내겠다는 노림수다.

기시다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언제 첫 정상회담을 가질지도 관심사다. 전임 스가 총리는 재임 기간에 단 한 차례도 문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열지 않았다.

두 정상이 대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일정은 이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가 꼽혀왔다. 그러나 일본의 중의원 선거 날짜가 오는 31일로 결정되면서 기시다 총리는 G20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지지통신이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대신 11월 1~2일 영국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시다 총리 취임에 맞춰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담아 축하 서한을 보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서한을 소개하며 “우리 정부는 (일본) 새 내각과 마주 앉아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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