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다회용 교체...호캉스 기념품 '어메니티'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03 08:00

업데이트 2021.10.03 14:17

정모(35)씨의 취미 중 하나는 호텔에 묵을 때마다 객실에 놓인 작은 샴푸나 바디워시, 로션을 챙겨오는 것이다. 일명 어메니티(amenity·편의용품) 모으기다.

작은 크기의 호텔 어메니티들. 주로 고급 화장품 브랜드가 많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작은 크기의 호텔 어메니티들. 주로 고급 화장품 브랜드가 많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조말론·몰튼브라운·발망·이솝·르라보·딥디크 등 그동안 모은 브랜드 종류만 10여 가지에 달한다. 정 씨는 “고가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미니 사이즈로 얻을 수 있어 좋다”며 “어메니티 종류를 보고 호텔을 예약한 적이 있을 정도로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공짜 일회용품’ 금지법 10월 국회제출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호텔 기념품’을 챙기기 어려울 전망이다. 환경부가 이르면 이달 숙박업소의 일회용 위생용품 무상제공을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법’인데, 말 그대로 대부분 비닐이나 고무·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편의용품 제공을 막아 쓰레기 배출을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내년 객실 50개 이상의 숙박시설을 시작으로 2024년엔 모든 숙박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황금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한 재활용쓰레기선별장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뉴스1

황금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한 재활용쓰레기선별장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뉴스1

업계와 소비자 반응은 ‘반반’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법의 취지에는 대부분 찬성한다. 하지만 숙박업체, 특히 고가의 요금에 고급 시설과 서비스를 내세운 호텔들은 편의용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자칫 고객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화제가 됐던 어메니티 마케팅 활용도 김이 빠지게 된다. 향후 ‘어메니티 비용만큼 호텔 가격을 내리라’는 소비자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환경지키자’ VS ‘호텔기분 안 나’ 

소비자 사이에선 ‘환경을 위해서라면 불편해도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 코로나19 확산 이후 호텔 이용의 ‘큰 손’으로 떠오른 MZ(밀레니얼·Z)세대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성향을 보인다. MZ세대 연구기관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자의 71%가 ‘가격과 조건이 같다면 친환경 활동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세면도구를 다 싸 들고 다녀야 하나’ ‘럭셔리한 기분을 느끼려고 호텔에 가는데 남들이 쓰던 비누, 샴푸를 쓰는 건 별로다’ 같은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환경·고객 둘 다 만족…바빠진 호텔

롯데호텔의 대용량 어메니티. 사진 롯데호텔

롯데호텔의 대용량 어메니티. 사진 롯데호텔

호텔들은 ‘친환경 호텔’이라는 방향에 맞춰 서비스 품질과 소비자 만족을 유지하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펌프질을 하면 내용물이 나오는 대용량 제품의 사용이다.

롯데호텔은 롯데시티호텔과 L7호텔 욕실의 어메니티를 여러 번 쓸 수 있는 대용량 제품으로 교체했다. 국내 호텔 중 가장 빠른 행보다. 특히 기존의 리필 형태가 아니라 개봉이 불가능한 용기로 만들어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위생에 대한 우려를 없앴다.

코오롱 계열 리조트 및 호텔에 설치된 친환경 비건 어메니티. 사진 코오롱

코오롱 계열 리조트 및 호텔에 설치된 친환경 비건 어메니티. 사진 코오롱

코오롱 계열인 경주 코오롱호텔과 서울 호텔 카푸치노도 전 객실의 어메니티를 대용량·다회용 제품으로 구비했다. 이 제품은 용기도 100% 재생 플라스틱으로 코오롱은 부산 씨클라우드 호텔 역시 연말까지 같은 어메니티를 설치할 예정이다.

친환경 소재라도 안 된다? 

가져갈 수는 있지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어메니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글래드 호텔은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인 ‘톤28’의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으로 어메니티를 구성해 제공한다. 아난티 호텔은 아예 용기가 필요없는 고체 타입의 어메니티를 자체 개발했다. 생분해성 케이스에 담긴 고체 샴푸·컨디셔너·바디워시 등과 종이 포장된 로션으로 구성돼 있다.

글래드호텔의 대나무 칫솔 등 친환경 어메니티. 사진 글래드호텔

글래드호텔의 대나무 칫솔 등 친환경 어메니티. 사진 글래드호텔

씨마크 호텔도 2년 간 개발 과정을 거쳐 바이오 플라스틱 용기에 생분해 소재 필름을 사용한 친환경 어메니티를 전 객실에 배치했다.

다만 친환경 소재의 어메니티에 대해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이번 법안에서 중요한 건 잠재적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일회용품’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해도 일회용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객이 필요에 의해 호텔 등에서 유료로 어메니티를 구입하는 것 까지는 막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무라벨 생수, 대나무키, 태양광까지  

롯데호텔은 국내 호텔 최초로 객실에 무료로 제공하는 생수를 무라벨 생수로 교체했다. 사진 롯데호텔

롯데호텔은 국내 호텔 최초로 객실에 무료로 제공하는 생수를 무라벨 생수로 교체했다. 사진 롯데호텔

환경부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선제적으로 호텔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롯데호텔은 지난 7월부터 자사가 운영하는 모든 호텔의 객실 생수를 플라스틱 필름이 없는 무라벨 제품으로 바꿨다. 라벨을 떼어내는 것만으로도 연간 약 300만병 이상의 생수 용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일 수 있고, 분리배출을 쉽게 해 재활용률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식품 포장박스나 비닐 쇼핑백도 모두 코팅을 최소화한 종이 소재로 대체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대나무 키카드. 사진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대나무 키카드. 사진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서울 시청 앞 플라자 호텔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사진 플라자 호텔

서울 시청 앞 플라자 호텔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사진 플라자 호텔

삼성동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도 무라벨 생수를 도입하고 객실 열쇠인 키카드를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재질로 교체했다. 플라자 호텔은 호텔 외관과 옥상부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탄소 배출 절감에 나섰다. 객실과 레스토랑 영업장에도 1만5000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절수형 샤워기, 양변기를 도입해 에너지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1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며 “일회용 편의용품을 만들어 호텔에 납품하는 업계, 소비자단체, 호텔업계 등의 의견을 수립해 업계가 수용할 수 있는 시점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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