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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패자부활전 없는 ‘오징어게임’ 보고 찝찝했던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105)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보셨나요?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으로 난리인 것 같습니다. 한국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1위를 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게임을 직접 해보는 영상, 달고나 틱톡영상, 유명인사의 오징어게임 인증샷, 드라마에서 입었던 단체복을 비롯한 오징어게임 굿즈 등 포털사이트에 오징어게임이라고 검색하면 재미있는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지금 중년의 연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게임으로 구성한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속 게임들은 20~30대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중년은 과거 추억을, 이 게임을 모르는 청년과 외국인은 새로운 것을 보는 신선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도 “이게 뭐지”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연휴 이틀에 걸쳐 9회를 다 보고야 말았습니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 내용도 있고 충격적인 장면도 있는데, 특별히 두 장면이 계속 생각납니다.

456억원을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오징어게임' 속 인물처럼 우리는 저마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456억원을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오징어게임' 속 인물처럼 우리는 저마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첫 번째 장면은 다시 게임이 시작되는 내용입니다. 드라마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몇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규칙 중 하나가 ‘과반이 동의하면 게임은 중단된다’입니다. 게임을 잘 모르고 참석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임을 투표를 통해 중단하기로 결정하면 게임은 중단됩니다. 그런데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친 게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돈 문제’ 때문에 다시 게임에 참여하는 장면이 참 슬펐습니다.

주인공 기훈(이정재)을 비롯해 오징어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해결할 수 없는 빚 문제를 상금 456억 원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가계대출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돈 문제가 있다고 모두 이 미친 게임에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빚과 가난이 만들어내고 있는 지옥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두 번째 장면은 살아남은 기훈과 게임을 기획한 노인 일남(오영수)의 마지막 만남 장면입니다. 게임을 기획한 사람이 일남이라는 사실을 안 기훈이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기훈의 분노에 일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일남은 ‘너무 많은’ 돈을 벌고 난 후 느끼는 허무함, 솔로몬이 모든 부와 영화를 누리고 느꼈던 그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감정을 ‘재미가 없다’고 표현합니다. 사는 재미가 없는 부자들은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뭘 해도 재미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어. 뭘 하면 더 재미가 있을까?’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게임이 바로 오징어 게임입니다. ‘사람을 말로 쓰는 게임’, 목숨을 걸고 진행하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456억원을 주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재미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잔인한 게임은 456명의 참가자 중 455명의 죽음과 한명의 부자 탄생으로 끝이 나는 게임입니다. 죽음을 앞둔 게임의 설계자 일남은 좀 더 짜릿한 재미, 관중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기분을 즐기기 위해서 직접 게임에 참석합니다. ‘재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겁니다.

이 두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아니 제가 느끼고 있는 한국사회 현실과 맞닿아있기 때문이겠죠. 빚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돈의 늪에 빠져 더 강력한 쾌락과 환락을 찾아 헤매며 스스로와 공동체를 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겠죠.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친 게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는 돈 문제’ 때문에 다시 게임에 참여한다.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친 게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는 돈 문제’ 때문에 다시 게임에 참여한다. [사진 넷플릭스]

게임의 기획자 일남은 자신을 ‘돈을 굴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객들이 “더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라고 묻는 것이 게임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똑같지 않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잠깐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돈도 ‘너무 많이’ 있고, 열심히 살 만큼 산 나의 고객, 나의 지인이 “더 재미있고, 짜릿하고, 자극적이며 계속하고 싶은 것이 없을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제가 가지고 있는 정답은 이런 것들입니다. ‘소유보다는 경험하는 것에 돈을 쓰세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하면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 보세요.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진부하고 재미없는 답변을 들으면 화를 내거나 비웃겠죠. 참 고민스럽습니다. 돈이 풀리고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오르고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돈이 많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돈이 흘러다니면서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아마도 나는 이런 부자를 친구로 만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오징어 게임을 했던 이유는 늘 그 게임을 이길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과 몸싸움을 하며 땀을 흘리고 게임이 끝난 후 엄마에게 불려가 씻고 가족들이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함께 즐겼던 이유는, 돈을 주고 달고나를 사서 별모양을 오려냈던 이유는 지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또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어제는 실패하고 패배자였지만, 오늘은, 그리고 내일은 나도 승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게임으로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었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그 게임을 즐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패자부활전도 없고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탈락하게 만들어진 영화 속 게임들은 중요한 요소가 사라진 아주 다른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삶은 ‘오징어게임’일 지도 모릅니다. 456억원을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영화 속 인물처럼 저마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힘겹게 경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게임은 한판으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영화 속 인물처럼 한 방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게임은 다시 시작되고, 또 다른 게임은 아주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진행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아주 슬프고 우울하고 끔찍한 이야기인데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면 ‘찝찝’합니다. ‘설국열차’를 볼 때도 그랬고, ‘기생충’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드라마 ‘악마 판사’도 그랬고 ‘모범택시’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징어게임’을 보고 나서 정말 찝찝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찝찝함을 이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한번 실패한 것이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고 믿는 분에게 재미없고 진부한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전달하는 일을 통해 그 찝찝함을 이겨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 글이 그런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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