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결혼한 직장인 이모(29)씨는 지난 5월 신혼집으로 서울 관악구의 A빌라를 2억7000만원에 샀다. 주택담보대출로 1억8000만원을 마련했다. 부족한 자금은 신용대출과 부모에게 빌린 돈으로 메웠다. 집값의 100%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한 셈이다.
이 씨는 “서울 아파트값이 '영끌'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올랐다”며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로 빌라 몸값도 뛰겠다는 생각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에서 20·30세대 ‘영끌 패닉바잉(공황구매)’이 이어지며 이들의 은행권 신규 주택담보대출액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약 4년간 257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이 빌린 주담대가 전체의 45%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29일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분기 말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20·30대 청년층이 시중은행에서 빌린 주택담보대출액(신규 취급액 기준)은 257조7367억원이다. 전체 주담대 규모(579조3440억원)의 44.5%를 차지한다. 문 정부 출범 후 주담대 신규 취급액의 절반가량을 청년층이 받은 셈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20대가 신규로 빌린 주담대의 급증이다. 20대는 다른 연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잣돈이 부족하다. 2017년 2분기 말 이후 4년간 20대의 주담대는 49조8866억원이다. 이미 60세 이상 대출자가 빌린 액수(46조3695억원)를 넘어섰다.
신규 대출과 대출 상환 등을 감안한 잔액 기준으로 살펴봐도 청년층의 빚 증가는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담대를 포함한 청년층 가계부채 잔액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약 487조원으로, 전체 가계부채의 27%를 차지했다. 대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12.8%로 다른 연령층의 평균 증가율(7.8%)을 크게 웃돌았다.
문 정부 이후 서울 아파트값 2배 뛰어
20·30대가 영끌해 이자 부담까지 내 집 마련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책과 대출 규제에도 아파트값이 상승하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7734억원에 이른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6억708만원)보다 배 가까이 뛰었다.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5억2322억원)도 같은 기간 63% 올랐다.
지난해 영끌해 서울 염창동의 한 아파트를 6억원에 산 직장인 김모(29)씨는 “1년 새 집값이 1억6000만원 정도 올랐다”며 “대출 이자로 생활비가 빠듯하지만 (그때) 잘 산 거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매달 주담대와 신용대출 이자(원금 포함)로 150만원을 갚고 있다.
집값이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패닉바잉으로 인한 청년층의 과도한 부채는 잠재적인 금융 불안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1~2년 뒤 주택공급이 늘면 주택시장이 조정받을 수 있다”며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에 상환능력 이상으로 빚을 끌어온 청년층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2030 영끌족은 빚 갚느라 소비 활동에 제약이 올 수 있다”며 “(이들의) 소비 위축이 경제뿐 아니라 결혼·출산 등에 영향을 주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혜영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청년들의 불안을 자극해 빚더미로 내몰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자산 과세를 강화해 시장의 불안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