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맞는 통일모델 찾아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통독,부러워만 하고 있을 때 아니다
독일통일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우리로서는 세계사적인 긴장완화의 결과로 평화공존의 길로 가는 구체적 실천 단계로서 이를 환영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분단됨으로써 전후 비슷한 국제환경에서 고통을 당했던 민족이 통일을 이루었다는 데서 우리 나름의 독특한 관심을 갖고자 한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요인은 내부적 여건과 외부적 여건의 두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외부적 여건은 물론 소련의 체제개혁 과정에서 비롯된 사회주의 이념의 탈바꿈,냉전구조의 해체,유럽질서의 재편 등 범세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변화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21세기의 조건을 결정짓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면에서 독일 통일의 의미를 음미하기보다는 분단국가의 통일이라는 우리의 희망과 관련해 우리는 더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같은 전후 냉전의 산물로서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관념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동서독의 내부관계의 발전유형이 남북한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해 왔다. 분단 이후 끊임 없었던 양독간의 인적ㆍ문화적ㆍ경제적 교류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다.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있어서 독일의 이러한 내적 관계의 발전은 물론 우리가 앞으로 본받아야 할 방법들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분단상황을 가져온 한반도와 독일의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요인들간의 차이,특히 분단 이후 전개되어온 과정들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는 분단 이후 한때 대립관계가 있기는 했으나 끊임없이 내적 관계를 증대시켜왔다. 동서독 지도자들은 통일이라는 정치구호 없이 평화공존과 민족동질성 유지에 노력해왔던 것이다.
이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6ㆍ25 이후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통일이라는 지상명제 밑에 이것이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돼 남북한 사회는 대립과 단절이 심화돼 왔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남북한 사회는 왜곡되고 독일의 경우와 반대로 내적 관계발전의 근거를 오히려 약화시켜왔다.
따라서 당장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관계접근의 근거를 우선적으로 마련하는 데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교류에 걸친 남북한간의 신뢰회복의 기반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 방법으로서 독일식 유형을 우리가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독일식으로 흡수 합병으로 가는 길이라는 경계와 위기감을 갖게 한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
우리가 그러한 모델을 적용하려 할 경우 오히려 북한을 경직화시켜 남북 대립을 격화시킬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 당국은 구호로서의 통일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신뢰회복으로 갈 수 있는 우리에게 맞는 남북한 교류의 실천모델을 같이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부럽기만한 독일식 통일이라는 막연한 감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