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차라리 '낙하산' 수를 정해 놓는 건 어떨까요?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08:08

업데이트 2021.09.29 08:10

 안녕하세요? 오늘은 권력층의 공직 나눠 갖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박용석 화백의 중앙만평

박용석 화백의 중앙만평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중략)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가왕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앞부분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공기업 ‘낙하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랩’처럼 흐르는 이 대목이 생각납니다. 자리를 찾아 권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떼로 출몰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을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는, 지금은 초라하지만 본성은 위대한 표범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자 중앙일보 1면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세워진 공기업 자회사가 낙하산 인사의 창구로 쓰이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공기업에 비정규직 근로자를 파견하는 용역회사를 대체할 공기업 자회사를 만들었는데 그곳의 임원 자리를 권력 주변의 인사들이 대거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34개의 공기업 자회사가 새로 생겨 총 51개의 상근 임원직이 만들어졌고, 그중 15개 자리가 ‘캠코더’(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의 몫이 됐다는 내용입니다. 나머지 36개 중 33개는 공기업 내부 ‘낙하산’의 자리가 됐고, 공모를 통해 채용된 외부 인사는 단 세 명이었습니다.

그 15명의 이력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단장, 대통령 경호실 차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장, 환경부 정책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의 과거 경력이 나옵니다. 공기업 자회사에서 차지한 직은 대표이사, 사장, 상임이사(본부장) 등입니다.

낙하산 인사가 옳다고 대놓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폐단을 모르지 않습니다. 언론도 끊임없이 감시하고 지적합니다. 그래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당선 직후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내는 것은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되는 일입니다.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낙하산 인사를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친박’ 인사들이 곳곳에 낙하했습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창출과 유지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리를 바랍니다. 권력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요 대선 주자 캠프에 온갖 인사들이 몰려듭니다. 당선 뒤에 입 씻으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배신자 프레임’이 만들어집니다. 권력 유지에 차질이 생깁니다. 몰려든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이 하이에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한 마리의 표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가 ‘낙하산 방지법’을 만들라고 국회에 요구한 지가 꽤 됐습니다. 법이 제정될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과 주변의 밥그릇을 발로 차는 일을 스스로 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낙하산 총량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공공 영역에서 대통령이 임명ㆍ지명할 수 있는 자리의 비율이나 전체 수의 상한선을 두는 것입니다. 대사ㆍ총영사나 공기업 사장과 임원 중 총 몇 명까지나 몇 %까지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략 예측이 가능하고, 마구잡이 낙하산 투하도 덜하게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국회에서 이런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길 기대해 봅니다.

신설 공기업 자회사의 낙하산 실태를 보여주는 기사를 보시죠.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비정규직 0’ 위해 만든 기관 13곳도 친여 낙하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세워진 공기업 자회사가 낙하산 인사의 창구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자회사를 설립한 23개 공기업의 임원을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이들 공기업은 34개의 자회사를 신설해 총 51개의 임원직(상근)을 신설했다. 이 가운데 모회사에서 내려온 인사가 33명, 친정권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15명(13개 회사)이었다. 공모를 통해 채용된 외부 인사는 단 3명이었다.

‘모회사 낙하산’은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만들어 퇴직자의 재취업 창구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기 식구 밥그릇 챙기기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이나 권력 실세의 측근, 또는 그 언저리에서 맴돌던 인사의 보상 차원에서 이뤄지는 ‘캠코더 낙하산’이다. 해당 업종의 전문성·경험과는 거리가 먼 인사도 많다. 친정권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선임되면서 기관 내부 갈등을 조장하고, 조직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 알박기 지적 많자, 자회사에 ‘스텔스 낙하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회사인 엘에이치주거복지정보㈜의 이재영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변호사였던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을 지냈다.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인 항공보안파트너스㈜ 신용욱 대표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 경호실 경호처 차장 출신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자회사 알이비파트너스㈜의 박영기 대표는 문경작물보호협동조합 이사장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을 지냈다.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노항래 대표는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국장과 옛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이사 외의 임원직에도 친정권 인사가 포진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 항공보안파트너스㈜의 조상기 상임이사는 한국노총 공공연맹 사무처장을 지냈고, KAC공항서비스㈜의 김종익 상임이사는 진보 성향의 역사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노항래 대표의 연봉이 1억7000만원에 달하는 등 이들 중 상당수는 1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대표에게는 비서와 운전기사·차량·사택 등 다른 혜택까지 제공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을 넘어야 하는 ‘공시족’(공무원·공공기관 시험 준비생)과의 공정성·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공약 실행을 위해 공공기관이 신설한 자회사가 정부·여당·모회사 인사의 스펙 쌓기용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커지고 있다.

추경호 의원은 “이들 자회사가 낙하산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창구이자 전관예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야당·언론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게 공기업의 자회사나 산하 기관의 숨은 요직으로 임명되는 그림자 낙하산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주요 공기업은 채용 내용 등을 공시하고 있으나, 자회사는 관련 법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보니 관련 정보 누락이 심하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친여 인사가 한국예탁결제원의 자회사 대표로 임명되고, 문 대통령의 팬카페 리더가 한국철도공사 자회사의 비상임이사로 선임되는 등 그간 비전문가 낙하산의 폐해가 누적된 배경으로 꼽힌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자회사의 주요 인사, 핵심 경영 정보 등은 외부에서 볼 수 있게 공시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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