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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어떤 아들의 퇴직금 50억과 어떤 딸의 아파트 수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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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장동 의혹에 등장한 권력자 자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떤 아들의 퇴직금 50억과 어떤 딸의 아파트 수혜

 곽상도 의원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중앙포토]

곽상도 의원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중앙포토]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의 한 대목입니다. 다른 시인은 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세 끼의 밥이야  
그럭저럭 마련하더라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빠듯한 살림살이에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꾸려온 지난 세월

월말이 되면
밀려드는 고지서 더미에
축 처지는 나의 어깨

아이들에게는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해도
이따금 새어 나오는 한숨

정연복 시인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시의 중간 부분입니다.

편히 잠을 청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줄어든 일자리를 놓고 힘겨운 경쟁을 해야만 하는 취업 준비생을 둔 부모, 그 경쟁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청춘이 된 자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가 제 주변에도 많습니다.

미친 전셋값에 이사 걱정이 산더미인 사람들, 결혼을 생각하는 자녀에게 작은 전셋집 하나 해줄 수 없어서 죄 지은 것 같은 심경의 사람들, 취업 못 한 자식에게 다른 살길 열어주지 못해 애를 태우는 이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어제 화천대유 대주주는 경찰서 앞에서 고문으로 모신 법조인들에 대해 “존경하는 형님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형님 중 한 사람의 딸은 화천대유의 직원으로 일하며 대장동 아파트 한 채를 ‘원가’에 받았습니다. 화천대유 측으로부터 수천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서 일하고 50억원의 퇴직금을 수령했습니다. 그 국회의원 역시 ‘존경하는 형님’ 중 하나인가 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이렇게 인심 좋은 동생을 곁에 두지 못한, 무능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5년 전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철부지 20대의 말에 분개한 국민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음서(䕃敍)의 나라’를 타파하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사위가 수상한 취업을 해도, 대법원장의 아들 부부가 ‘관사 재테크’ 의심을 사도 그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아무런 설명을 안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교수 부모가 창조해낸 ‘스펙’ 덕분에 그들의 딸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그 뒤로는 의사가 됐는데도 그 부모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다들 그러지 않느냐”고 큰소리치는 사회가 됐습니다.

아들이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국회의원은 공적 지원금 혜택을 입은 대통령의 아들을 향해 ‘아빠 찬스’ 쓴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비판했던 정치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아들이 전대미문 수준의 퇴직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자 의원직은 유지하면서 당적만 포기했습니다. 삼성의 정유라씨 승마 지원 과정을 추적했던 특별검사는 딸이 원가에 아파트를 받은 게 알려지자 “위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보통 아버지들의 한숨이 깊어갑니다. 술잔을 바라보는 눈이 촉촉해집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 딸의 대장동 아파트 취득 과정이 기사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화천대유, 박영수 딸에 대장동 아파트 분양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40)이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진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보유한 대장동 아파트 잔여분을 최근 분양받아 논란이다. 박 전 특검 딸은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에 2015년 6월 입사했으며 최근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

박 전 특검 딸이 분양받은 아파트는 화천대유가 직접 시행해 2018년 12월 평당(3.3㎡) 평균 2030만원에 분양했던 판교 퍼스트힐푸르지오(A1·2블록) 아파트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박 전 특검 딸은 올해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짜리 한 채를 지난 6월 6억~7억원에 계약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 호가는 15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분양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박 전 특검 측은 이날 “가격 인하 등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초 다른 사람에게 분양됐다가 계약이 취소되면서 화천대유가 관리해 온 회사 보유 물량으로, 박 전 특검 딸이 기존에 보유한 주택을 처분한 자금으로 분양대금을 치렀다는 설명이다. 박 전 특검 측은 “수차례 미계약 등으로 인한 잔여 세대가 남은 아파트로 당시 추가 입주자 공고 등 공개된 절차를 통해 누구나 청약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아파트는 2019년 2월 계약 취소분 등 잔여 가구 142가구를 놓고 무순위 청약, 이른바 ‘줍줍’을 진행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중 97가구가 계약됐고, 시행사인 화천대유가 나머지 물량 중 24가구를 가져갔다.

“15억짜리를 7억에 공개 분양했다면 8억 로또인 셈, 전국민이 몰렸을 것”



업계에 따르면 당시 대장동 일대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데다 주변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아 잔여 물량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다고 한다.

화천대유는 이를 2년4개월 동안 보유하다 이 중 한 채를 박 전 특검 딸에게 최근 초기 분양가대로 분양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전용 84㎡의 매매 호가는 15억원에 달한다. 전세 매물이 8억원에 나와 있다. 박 전 특검 측이 해명한 “누구나 청약할 수 있었던” 무순위 청약 때와 달리 최근엔 집값이 두 배로 뛰는 등 시장 분위기가 180도로 바뀐 상황이다. 박 전 특검 딸이 아파트를 계약한 시점인 올 6월에는 박 전 특검 측의 말과 달리 ‘누구나’ 청약할 수도 없었다.

화천대유는 보유하고 있던 매물을 공개 모집이 아닌 임의 모집으로 박 전 특검 딸에게 공급했다. 주택공급 규칙에 따라 무순위 청약에서도 남은 물량의 경우 시행사가 공개모집이 아닌 임의모집을 할 수 있다. 분양가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처음 받았을 때의 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

결국 화천대유가 박 전 특검 딸에게 이 아파트를 초기 분양가에 공급한 것은 위법적이지 않지만, 누구나 이렇게 분양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은 공급 부족 등으로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줍줍’ 무순위 청약의 경우 경쟁률이 더 치열하다. 지난 8월 입주를 앞두고 진행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5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다섯 가구 모집에 25만 명이 몰렸다. 전용 84㎡의 경우 분양가는 14억원인데 시세는 분양가의 배 정도여서 ‘14억 로또’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화천대유가 왜 박 전 특검 딸에게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했느냐를 놓고서 박 전 특검 측은 “잔여세대 아파트 처리 경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회사만이 알 수 있으므로 상세한 사항은 회사를 통해 확인해 달라”고 밝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당장 엄청난 시세차익이 눈에 보이는 물량이고 시행사가 잔여분을 매입해 전매해 팔 수도 있었는데 이를 특정 개인에게 분양한 것 자체가 특정인에게 증여세 등의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합법적’으로 큰 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호가 15억원짜리 아파트를 7억원에 분양하면 ‘8억 로또’인 셈인데 만약 줍줍을 했다면 전 국민이 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특검의 딸은 현재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박 전 특검 본인도 2016년 11월 특검에 임명되기 전 이 회사에서 고문에 이름을 올리고 2억원대 고문료를 받았다. 이 밖에도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2015년 6월 화천대유에 입사했다 지난 3월 퇴사하며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은화·오원석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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